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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오 Oct 29. 2020

더는 무섭지 않다

[도서]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들보다 넓은 하늘 아래 출렁이는 누런 논 사이로 초가집 구들장 같은 길이 길게 나 있었다. 그 끝에는 할아버지가 반기고 할머니가 기다리는 외갓집이 있었다.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흙먼지를 내며 털레털레 따라갔다. "아! 진짜 싫은데" 길 한가운데 검은 그것들이 움직였다. 멀리 초가집이 점점 커질수록 덩달아 분명해졌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꼭 쥔 엄마손을 당기며 칭얼거렸다. 엄마는 하는 수 없이 나를 둘러업었다. 이번에도 결국 그것들은 내 발아래 있었다. 여기저기 가시가 돋은 반짝이는 털뭉치가 요란하게 움직였다. 엄마는 아예 그것들이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사이를 헤치고 지나갔다. 나는 구덩이 속 굶주린 야수라도 있는 것처럼 안간힘을 다해 발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닭들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푸드덕 뛰어올라 얌체같이 내 신발을 쪼았다. 무서웠다.


  이것이 새에 대한 나의 첫 번째 기억이다. 그쯤부터 나는 새가 싫었다. 누가 물어보면 지저분해서라고 둘러대지만, 사실은 무섭기 때문이다. 기묘한 색의 매끈한 깃털과 그 사이로 드러난 울퉁불퉁한 피부, 괴기하게 움직이는 머리와 플라스틱같이 반짝이는 까만 눈, 딱딱한 부리와 예리한 발톱. 어느 하나 편한 구석이 없다. 머리 위를 날아다니기라도 하면 아예 몸이 굳어버린다.


  스무 살 여름, 고등학교 친구들과 부산에 놀러 갔다. 우리는 광안리 해수욕장 바로 뒷골목에 민박집을 잡았다. 소복을 입은 귀신이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기어 나올 것만 같은 우물이 마당 한가운데 있는 집이었다. 방구석에다 짐을 던져두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뜨거운 모래를 밟고 푸른 바다로 뛰어들기 위해서다. 나는 꾸물거리다 맨 마지막에 혼자 집을 나섰다.

  철대문을 넘자마자 길 한가운데 서있는 갈매기 한 마리가 보였다. 나는 일단 자리에 서서 지켜보았다. '제발 이쪽으로 오지 마라' 우물이라도 있는 것처럼 골목이 꽉 차보였다. 나는 그 옆을 지나 바다로 갈 수 없었다. 분명 다가가면 날아가겠지만, 그 낯선 동물이 너무 무서웠다. 갈매기는 한참을 기다려도 날아가지 않았다. 머리를 씰룩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먼저 간 친구에게 전화했다. 얼마 후, 골목 끝에 의아한 표정을 한 친구가 나타났다. “왜!” 친구가 다가오자 갈매기는 슬쩍 날아갔다. 그제야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친구 쪽으로 걸어갔다.


  몇 해 전, 작은 새 한 쌍이 현관 위 지붕 아래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알을 낳고 새끼를 깠다. 어미는 쉴 새 없이 둥지를 떠났다 날아들기를 반복했다. 새끼는 그런 어미와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울어댔다. 나는 둥지를 옮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외출 후 돌아와 집 안으로 들어갈 때면 새들은 날카롭게 지저귀며 머리를 쪼았다. 어디서 날아오는 알면 미리 피하겠지만, 하늘에서 날갯짓을 하며 사방으로 달려드는 통해 도무지 피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집에 가기가 싫었다.


  조나단이 무리를 이해할 수 없었던 만큼, 무리에게도 조나단은 골칫거리였다. 내가 새를 무서워 한 만큼, 새도 내가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우린 서로 너무나 다르다. 나는 절대 땅을 걸어 다니고, 새는 주로 하늘을 날아다닌다. 나는 크고, 새는 작다. 닭들이 어린 내 발을 쪼고, 작은 새들이 내 머리를 쪼았던 것도 그런 내가 무서웠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자리를 벗어나면 그들은 더는 쫓아오지 않았다.

  새가 나를 무섭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새를 위협했다고 생각하니 미안하다. 나는 이제 더는 새가 무섭지 않다. 나와 다른 것뿐이다. 다만 배려하는 김에 거리는 계속 두고 싶다.




갈매기의 꿈 / 리처드 바크 / 공경희 / 나무옆의자 / 2018년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출처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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