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비 오는 하루였다. 서점 안에 손님이 없어 유리창에 딱 붙어우산 쓰고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했다. 혼자 우산 쓰고 걷는 사람도 있지만 함께 우산 쓰고 걷는 사람도 있다. 한 사람이 갑자기 우산 밖으로 튕겨 나간다. 우산을 들고 있던 사람이 바쁘게 튕겨 나간 사람을 쫓는다. 검은색 치마에 하얀색 상의로 된 예스러운 교복을 입은 여학생 둘이다. 열리지 않는 통유리 안에서 봐도 둘은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중충한 날씨인데도 여학생이 있는 곳만 화창하게 변한 듯하다. 다시 둘은 함께 우산을 쓰고 총총총 걷는다. 나는 골목 코너에서 사라질 때까지 창에 얼굴을 붙이고 그들을 봤다.
읽다가 만 책을 다시 펼쳤다. 자꾸 방금 지나친 여학생 주위로 폭죽처럼 펼쳐진 환함이 생각난다. 책을 덮었다. 신기하게도 글을 쓰고 싶어 진다. 저 웃음에 대해. 짧은 순간 펼쳐진 알 수 없는 환함에 대해. 나에게도 그럴 때가 있었다. 조금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많았을 것이다. 방금 지나친 여학생은 스스로 그 순간의 환함을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고, 나도 그렇게 누군가의 관계에서 뿜어져 나왔을 환함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뒤늦게 알아챈 환함은 삶의 일깨움으로 몸 구석에 자리 잡는다. 먼지에 덮여 잊혔다가 다시 환하게 다가오고, 가끔은 용기와 변화가필요해 기어이 찾아 꺼내보기도 한다.
몇 년 전 가을에 나는 고장 난 사람처럼 지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고장 났다는 것이 아니라 고장 난 부분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구나 어느 한 부분이 고장 나고 고치고 하는 반복을 통해서 삶을 쌓아간다. 고치는 행위가 반짝이는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의축적으로 '나'라는 사람을 표현한다. 고장 난 나는, 아니 고치지 않는 나는 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과 내 삶을 피해 다녔다.
발터 벤야민은 지나가 버린 죽은 과거에 생기를 넣기를 바랐다. 과거가 지금과 미래를 위해 희생하고 억압당했다고 보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니까 과거의 희생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고, 앞으로 좋은 미래가 올 거라는 희망은 거부했다. 나도 동의한다.
지나간 과거, 내가 잃어버렸던 과거가 환하게 빛나기를 바란다. 분명 나에게도 환함이 넘쳐났던 순간이 있고, 그것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잊었다면 다시 기억하기 바란다. 계속 유추해서 하나하나 꺼내보는 것이다. 죽은 과거를 살리는 작업이 곧 현재이고 미래인 것이다. 메시아는 미래에 오지 않는다. 이미 과거에 있었다. 미래에 이렇게 살고 싶다는 목적론적인 인생관에서 벗어나 과거에 내가 살았던, 이미 왔던 아름다웠던 삶의 순간을 복기하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던 가을날, 나는 과거를 복기했다. 기어코 환함을 찾아냈고, 그 작은 환함은 헤드라이트가 되어 다른 환함을 찾게 도와줬다.
여학생 둘은 사라졌지만 내 입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와 미래에 저런 환한 삶의 순간이 오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이미 있다. 복기하니 참 많다. 다시 떠오른다. 내 우산 안에 있던 당신의 행복한 미소가.
죽은 과거가 살아날 때, 지금 내가 미소를 짓는 것처럼 현재도 함께 환해진다. 다른 말로 하면 지금 환해지면, 이 경험이 축적되어 미래가 환해진다. 중요한 것은 그 환함을 쌓아야 하고, 그 환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가 가 아닌 과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