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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Nov 06. 2023

사람은 어렵다

서로



  비가 내린다. 서점 안이 차분하다. 바람 소리가 가끔 들리고, 바로 옆 건물 철판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를 매료시킨 빗소리는 흙에서부터 올라와 펼쳐진 우산에 갇힌 향긋한 흙냄새를 상기시킨다. 비 오는 절을 보기 위해 걸었던 축축한 땅이  떠오른다. 괜히 강아지처럼 킁킁거려 봤다. 커피 냄새만 맡아지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빗소리는 마음을 간지럽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진정하자. 따뜻한 를 내려마셨다.

  하지만 빗소리가 두드린 것들이 야생개처럼 밖으로 뛰쳐나온다.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 사람이 떠난 이유가 떠오른다. 그 사람이 떠난 것이지만, 그쪽에서 보면 내가 떠난 것이다. 이별의 이유는 서로를 향해 있던 감정이 말랐기 때문이다. 슬픈 이별 안에 가득한 감정들이 바삭하게 말라서 낙엽처럼 떨어진 것이다. 그 이유는 서로 다르겠지만, 같더라고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람은 어렵다.

  이 말은 내가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고, 그 많은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나도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라면 상처받았다는 뜻은 상처를 줬다는 뜻이기도 한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내가 상처를 받았다가 아니다. 항상 내가 우선이기에 감정적으로는 내가 상처를 받은 것이 중요하지만, 사람이 어려운 이유는 관계가 틀어져서이고 관계 안에 자신도 포함된다. 공동의 문제다. 내가 상처를 받았다는 이유가 곧바로 관계의 어려움이 된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어려운 사람이기에 그 사람도 나와의 관계를 힘들어할 것이다.

이 되돌이표에서 탈출하기 힘드니 어렵다는 뜻이다. 되돌이표에서 어느 부분을 뚫고 탈출해야 한다. 내가 타인을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타인이 어렵다가 아니라 내가 어려운 사람이라는 인식이 먼저다.

  사람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를 보고 당신은 어려운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면....

그런데 가끔 누군가에게 참 쉬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데, 그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당신은 매력적이지 않아요,라고. 역시나 어렵다.




   커피 장사를 10년이나 했는데, 내가 바뀐 건지, 트렌드에 따라 내가 적응하지 못한 건지, 새로운 맛에 따라가기 힘들고 여전히 어렵다. 나도 마찬가지고, 맛에 참 까다로운 사람이 되었다. 커피가 어렵다는 말은 커피 맛보다는 그것을 맛보는 사람이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똑같은 말이다. 사람이 어렵다.

  손님이 없는 틈에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샀다. 탁, 시원하게 알루미늄이 분리되는 소리가 서점에 울린다. 한 음 마셨다. 아참,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를 마셨지. 맥주의 기포처럼 다시 슬픈 기억들이 올라온다.

  삶에 대한 성찰 따위는 아니고, 내 못난 모습이 떠오르고, 삶이 그렇게 흘러갈 거라는 체념이 떠오른다. 그렇게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고,  흘러가는 시간을 잡고 변화를 꾀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사람이 어렵고, 나는 어려운 사람이다. 되돌이표에서 탈출하지 못했고, 이기적이게도 그 이유는 갇힌 내가 편안해서다.

  나를 이해해 줘. 공감해 줘.

  가끔 나도 모르게 내가 불리하면 튀어나오는 이 말은 내가 여전히 감옥에 갇혔다는 뜻이다. 내가 원하는 방식과 감정으로 타인이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사실 거의 명령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타인을 공격한다. 우리는 너무 쉽게 이해와 공감을 외치지만, 그 외침은 자주 내 앞에 있는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한다.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살아온 방식관점이 철저히 무시하고 나를 봐달라고 강요한다.

 그렇게, 누구도 나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고, 공감할 수 없다는 사실과 화해하지 못한 나는 감옥 안에서 타인을 비난하며 안주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열쇠를 가지고 있기에, 수인도 교도관도 나이기에 내가 감옥 문을 여는 순간 당신이 나를 본다. 당신의 방식으로 나를 본다.

  


  맥주를 마신 김에,  조금 과장해서 연결해도 좋을 것 같다. 사람이 어렵다는 말은 결국 사랑이 어렵다는 말이다.  사랑이 어렵지 않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다. 세계 평화까지 말이다. 그러니 인정한다. 사랑이 어려운 이유는 사람이 어렵기 때문이고, 사람이 어려운 이유는 내가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어렵다.


  다만, 화해하더라도, 화해하는 대상이 필요하다. 사랑이란 개념과 화해해 봤자, 실체가 있는 대상이 나타나면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다시 드러난다.

  ‘서로 사랑하라.’ 이 말에서 방점은 사랑이 아니라 ‘서로’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에게만이라도 사랑이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에는 당신도 있지만, 나도 포함된다.

   나는 나와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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