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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Nov 04. 2023

삶의 완성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이 쓴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읽었습니다. 어떤 소설은 형식이 말을 걸고, 어떤 소설은 주인공이 말을 겁니다. 가끔은 주인공이 속한 사회가 말을 걸기도 하지요. 모든 소설이 말을 거는 건 아닙니다. 타이밍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소설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면, 좋은 소설은 저에게 소중한 친구처럼, 또는 전장의 아군처럼 비장하게 말을 건넵니다.  

 너는 네 삶을 선택했느냐?

 이 질문은 다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 선택했느냐? 삶의 완성을 위해 선택했느냐?

 이 모든 질문이 너무 시끄럽게 울리지만, 질문을 받는 저는 고독하기만 합니다.


 삼십오 년 동안 책을 압축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 한탸입니다. 그가 하는 일은 버려진 책을 압축하는 일이고, 어쩌면 그건 책의 장례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밀려드는 폐지 더미 속에서 희귀한 책의 등짝이 빛을 뿜어낼 때도 있다... 나는 부신 눈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그 책을 건져 앞치마로 닦는다. 그런 다음 책을 펼쳐 글의 향기를 들이마신 뒤 첫 문장에 시선을 박고 호메로스풍의 예언을 읽듯 문장을 읽는다.-14페이지’


 가끔 한탸는 빛을 발하는 책을 발견하고 자신의 값진 발견물들 사이에 넣어둡니다. 압축이 장례식이라면, 한타가 책을 선택하는 행위는 폐지가 될 운명의 책을 살려내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버려진 책 더미는 한탸만의 은밀한 도서관인 거죠.

 우리는 도서관에 가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힘든 결정을 한 적이 많습니다. 수많은 책 중에서 빛나는 책을 선택할 기준이 없기 때문이죠. 감히 말하면, 읽을 책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미 선택된 인생이 책을 고르는 것이고, 골라진 책이 가끔은 인생의 진로를 바꾸기도 합니다. 상호작용을 하면서 삶을 이끌고, 삶을 반성하게 합니다. 한탸는 오직 자신이 눈으로 읽은 글자를 통해서 책을 선별합니다. 유명한 작가, 또는 위대한 철학자 따위의 사전 지식을 가지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죠.

 햔타는 자신이 선택한 책을 읽으면서 한 층씩 차곡차곡 삶을 쌓습니다. 그렇게 쌓인 선택의 기둥들이 햔탸의 삶을 만듭니다. 누구도 쉽게 무너트릴 수 없죠.


 한탸는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라고 말합니다. 정치는 부조리하고 약자는 상처를 받고 희생 당하는 시기입니다. 혁명을 부르짖지만, 그 혁명을 부르짖는 인간이 혁명을 위해 인간을 처형합니다. 혁명을 하는 인간이 인간적이지 않을 거죠. 그래서 한타는 고독을 선택합니다. 그의 고독은 그가 발견한 빛나는 책과 함께합니다. 고독하지만, 너무 시끄러운 문장으로 머릿속은 가득합니다. 그런 한탸의 선택을 현실에서 도망쳐 책으로 들어간 패배자라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한탸의 삶을 모르는 사람의 단편적인 평가죠.

 책 처음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책과 함께 압축기 안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한탸는 ‘내가 자랑스럽고,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한타의 선택은 삼십오 년 동안 지켜온 러브스토리의 완성입니다. 인간적이지 않은 인간의 지성이 그의 삶을 빼앗아 가게 두지 않습니다. 어떤 선택은, 아무리 그 선택이 패배자 같더라고, 그 자체로 완성일 수 있습니다. 타인을 해하는 선택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

 삶은 그 삶을 선택한 사람의 것이니까요!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공한 삶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완성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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