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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Oct 31. 2023

접속사

소란과 연결



  마음이 밤새 소란스러웠고, 새벽까지 잠잠해지지 않았다. 억울하게도 이런 소란은 어떤 합의도 없이 들이닥친. 방황하지 않는 시기가 없다지만, 이제 와서 아동기를 벗어난 사춘기 소년처럼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는 뭘까? 어둑한 방 안에서 천정에 손을 뻗었다. 손이 그림자와 함께 두텁게 보였다. 잠결이라 손이 꽉 쥐어지지 않았지만, 힘을 내서 쥐어봤다. 잡으면 사라지는 것들. 나는 항상 그런 것들이 무서우면서 그립다. 그래서 잡았다고 착각하는 것들에게 외면받기 전에 겁쟁이처럼 먼저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다시 사무치게 잡기를 바란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이 소란은 멈추지 않는다.


 소란의 뜻은 시끄럽고 어수선함이지만, 왠지 어감이 시끄럽다는 단어보다 부드럽게 느껴져 소란이란 단어를 내 안의 소음을 표현할 때 자주 쓴다. 아마도 내 안의 소음을 스스로 조심하려는 의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날카로워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독이는.

  실제로 내가 나를 다그쳐 상처 낸 적이 있는데, 그 상처는 상처가 아니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처라기보다는 성장통, 이렇게 멋진 단어로 바꿔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상처를 극복하다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생각인지 나중에 깨달았다.



  이 글은 접속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 안의 소란을 잠재우는 단어는 명사도 형용사도 아니다. 접속사다.

  마음에 소란이 일어나면 끝말잇기처럼 말꼬리를 잡아 계속 이어 나간다. 그래서 어쨌다고,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뭐지? 그리고 다음 순서는? 이렇게 접속사를 붙여 끝없이 이어지게 만든다. 접속사는 연결이다. 논리 영역에 속해 있기에 두서없는 소란에 논리를 부여하고 새로운 것과 탄탄한 접속을 도와준다. 읽고 있던 책과 접속하고, 보던 영화와 접속하고, 가만히 누워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과도 접속한다. 문득 떠오른 과거와 접속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더욱 시끄럽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뒤죽박죽인 소란을 계속 이으면 시끄러움은 다소 평온해진다. 소란소란이 도란도란이 될 때까지 계속 연결하다 보면 소란은 대화가 된다.  

  물론 다시 시끄럽게 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그 시끄러움은 내면 깊숙이 파고드는 날카로움이 어느새 밖으로 향해 있다. 이 모든 과정을 누군가는 성장통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 경험으로 비춰보면 그렇게 퉁 치면서 명사로 가둬버리는 행위는 오히려 성장통을 방해했던 것 같다. 나는 얼마나 슬기롭게 성장통을 지내왔을까? 과연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했을까? 오히려 상처가 낫지 않았는데 없는 척, 또는 가리면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아집과 고집만 늘어났다. 상처가 생겼다면 치료해야 한다. 성장을 위해서가 아니다. 아픈 곳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성장은 상처의 메아리와 접속해 얻는 행운 같은 것일 뿐이다.   

  접속사는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을 이어준다. 상황과 상황도 연결한다. 멀리 있는 것과 가까운 것을 연결한다. 상관없는 것들끼리 연결하기도 한다. 자꾸 들춰내고 덧나게 하는 짓 같지만, 들춰내지 않고 치료하는 방법을 나는 모른다.



  터벅터벅 걷다가 공중전화기를 발견했다. 누가 이 전화기를 쓸까 싶기도 하지만, 작년 여름쯤에 오래된 파란색 전화박스를 철거하고 빨간색 전화박스로 교체되었다. 잘 쓰지 않지만 여전히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 한쪽이 뭉클해진다. 며칠 전에도 밤늦게 퇴근할 때 환자복을 입고 공중전화기를 쓰는 남자를 봤다. 스쳐 지났기에 통화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남자는 행복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공중전화를 보자 남자가 떠올랐고 나도 모르게 행복한 표정을 따라 지었다. 아침까지 이어진 소란이 조금 잠잠해진다.

  접속사는 상황과 상황을 이어준다. 나도 행복한 표정으로 전화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며칠 동안 흐르는 시간 속에 혼자 갇혀 있었다. 접속사가 가장 빛날 때는 연결된 대상이 빛날 때이다. 나도 소란 벽을 뚫고 그런 대상과 연결되고 싶었나 보다. 접속사의 최종 목표는 접속하는 대상, 바로 당신이다.

  그래서 전화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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