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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Jan 08. 2024

가정주부인 나는 오늘도 제보를 한다.

기자 때 배운 버릇 남 못 준다더니 

나는 3년간 기자생활을 했었다. 


기자생활을 통해 얻은 건 욕과 인터넷에서 연락처 구글링하는 방법, 보도 출처 알아내기 정도 등이다. (글쓰기 실력도 약간 덤으로)


기자를 그만두고 일반회사에 다니면서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지금, 애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 내가 하는 일은 담당 공무원과 통화하기 그리고 언론사에 제보하기다.


아파트 동대표도 2년째하고 있는데 집앞 공원 공터에 언젠가부터 이상한 말뚝 같은 게 보였다. 


원래는 농구골대가 있던 장소였는데 그 전부터 "농구장 소음이 심할 경우 농구대를 철거합니다"라고 지자체에서 현수막을 걸어붙여 놓았던 터였다. 그래서 당연히 그 자리에 있던 농구대가 철거된 걸 보고 민원 소음 때문에 철거된 걸로만 짐작했다. 


'여긴 애들 밤에 농구하지도 않는데 철거되었네? 땅에 박힌 이 말뚝은 뭐지?'라며 무심코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해당 공원의 정자가 통째로 사라지고 왠 조악한 벤치의자가 설치된 걸 보고 나는 해당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확인했다. 


왜 주민들이 잘 이용하는 평상 정자를 없애버리고 반토막 크기짜리 벤치의자를 설치했는지 듣기 위해서였다.


내가 일일이 이렇게 공무원에게 확인하는 이유는 안 그래도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도 평상형 정자를 다 없애고 등받이 없는 불편한 벤치로 바꾸는 와중에 시에서 운영하는 공원이 앞장서서 똑같은 행태를 답습하니 답답해서였다. 


이렇게 될 경우, 분명 인근에 있는 다른 공원의 평상형 정자도 없어지는 건 시간문제이기에(우리 동네는 계획형 신도시였기 때문에 아파트 건설사들이 법적 의무사항으로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에 작은 공원들을 조성해서 시에 기부했다) 나는 다른 공원의 정자들도 조악한 벤치로 바뀔까봐 확인을 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담당 공무원과 통화를 한 후 동네 네이버카페에(맘카페는 아니고 남녀구분 없이 지역주민들이 모인 카페이다) 공원 정자 폐쇄 건에 대해서 글을 올렸는데 어느 분이 댓글로 "근데 저 농구골대 없앤 자리에는 게이트볼장을 짓는다던데요?"라고 댓글을 단 것이었다.


'게이트볼장???' 


내가 알기로 게이트볼장 소음이 그냥 보통 소음은 아닌 걸로 알고 있어서, 얼른 유튜브를 찾아 게이트볼장 소음을 찾아봤다. 


영상으로 접한 게이트볼장 소음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리고 다른 동네에서는 이 게이트볼장 소음으로 굉장한 고통을 받고 있었고, 어떤 동네는 게이트볼장이 들어서기 전에 주민들이 합심하여 게이트볼장 설치를 무산시킨 일도 있었다.


그렇게 공원 정자 건으로 촉발된 일은 게이트볼장으로까지 확대되어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다시 담당공무원과 통화하였다. 담당공무원의 입장을 들었을 때 이 계획이 철회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 지역 언론사에 제보하게 되었다. 


담당공무원과 통화하고 기사로 내용제보하는 일이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리냐면, 정말 내 금쪽같은 오후 시간을 다 보낼 정도이다. 게다가 사실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오는 감정 소모는 덤. 


가끔씩은 현타도 온다. 


'무슨 현직 기자도 아닌데 이렇게 상세하게 팩트를 확인하고 앉았냐.
애 어린이집에 보내고 뭐하는 짓일까'



그런데 이렇게 담당공무원과 통화하는 이유는 우선 내가 궁금해서이고, 담당공무원과 통화한 내용을 바탕으로 더 자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언론사에 제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상세하게 제보할수록 기자가 알게 되는 사전 정보가 많아지고, 기사화가 될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언론사에 제보를 할 때 때때로 내가 갖고 있는 녹취본을 제공하기도 하고, 아니면 담당 어느 공무원과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통화를 했다고 내용을 상세하게 정리해서 보내기도 한다. 


'기자였다면 내가 바로 보도할텐데'라는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정작 사회부에서 근무해본 적도 없고 이렇게 제보할 여력이 남아도는 건 내가 기자가 아닌 일반인이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이렇게 내 시간과 감정을 소모해가며 제보한 기사는 오늘도 이렇게 기사화가 되었다. ('취재가 시작되자'라는 마법의 문장이 힘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며)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629243



이 와중에 나는 또 다른 곳에 제보를 하고 있다. 오늘은 명동 광역버스 정류장 건으로 서울시에 전화를 걸고, 내가 살고 있는 지자체 담당 공무원과 통화를 한 후 언론사에 제보메일을 보냈다. 


안 그래도 명동 광역버스 정류장 대란 건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서울시가 5일에 발표한 보도자료 내용 때문에 동네에서 그 광역버스를 이용하던 사람들이 '발칵' 뒤집혔다. (이것 역시 동네 네이버카페에서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육아휴직 전까지는 명동정류장을 이용하던 통근러였기에 휴직하고 있는 지금 이게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결혼 전까지 서울에서만 살다가 경기도민이 된 지금, 경기도민이 살고 있는 삶이란 정말 경기도민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오전에 동네카페에서 접한 내용을 바탕으로 서울시 보도자료를 찾아서 읽고, 서울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자료에 나온 내용을 확인했다.(무려 보도자료에 나온 담당자 세 명 번호를 다 걸었다)


서울시 담당자가 공을 경기도에 떠넘기는 모양새였기에 해당 담당자에게 '서울시에서 광역버스 협의하고 있다는 경기도 담당자 번호를 알려주세요'라고 해서 이번에는 경기도에 전화를 걸었다. 


서울시에서 엉뚱한 담당자 번호를 알려줘서 또 경기도 내에서도 전화가 몇 번이고 돌고 돌고 돌아 겨우 경기도 담당자와 통화했다.


전화 받는 공무원들도 황당할 것 같다. '얜 기자도 아닌데 어떻게 내 번호는 알았으며, 꼬치꼬치 캐묻는 걸까'하고. 


이렇게 들인 시간이 족히 3시간은 넘을 거다. (피같은 내 시간). 


예전에 어떤 책인가 인터넷에선가 읽었는데 엄마가 세상일에 너무 관심을 가지면 집안일에 소홀하고 바깥으로 돈다더니 내가 딱 그런 케이스인 거 같다. 


휴, 둘째도 임신한 지금 진짜 세상일에, 동네일에 관심 좀 끊어야 하는데. 


뉴스를 안 보고 인터넷을 안 보는 게 답이려나. 진짜 프로 오지라퍼 납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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