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담 J Mar 07. 2024

단절, 경계, 심연

[날마다 읽기 007] 인간의 위대한 질문 - 배철현

출근 나흘째. 어제 밤에만 해도 죽고싶은 생각이 안 든다는 사실만으로도 생경하고 감사했는데, 오늘 아침부터는 우울했다. 그래도 해야할 일을 했다. 이력서를 정리해서 이직을 고민하는 회사에 보내고, 사무실에서 필요한 일을 해치웠다. 그리고 혈색도 좋아보이게 화장도 하고 빨간 립스틱을 발랐다. 빨간 립스틱을 바르면 활기도 있어보이고 자신감도 있어보이고 무엇보다 기분이 좋다. 뭐라도 내가 기분 좋은 걸 하나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을 읽었다. 


신약성서를 바탕으로 예수의 질문을 통해 삶을 돌아보는 인문서적이다.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하는 '신의 위대한 질문'도 있다. 두 권이 시리즈인데, '신의 위대한 질문'은 몇 년전에 읽었고,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이번 세례를 앞두고 읽기 시작했다. 두번째 파트의 제목은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본 적이 있는가?>이다. 현재의 평안을 넘어 권태로운 상태를 깨치고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심연으로 들어가 자신의 경계를 넘어가 본 적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나는 그런 적이 있었던가?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프리랜서 생활 5년 가량을 마치고 제주도에 한달동안 혼자 지낸 적이 있다. 모든 것을 단절하고 오로지 쉬기 위해서 내려갔다. 그 때 아빠와 이메일을 주고 받았는데 그 중 하나를 열어봤다. 거기에는 나 자신을 찾기위해 모든 것을 단절하고 제주도에 내려가고, 그 결과로 나를 열어가는 내가 믿음직스럽다면서, 나 스스로를 믿고 살아나가기를 바란다는 아빠의 마음이 적혀있었다. 날짜를 보니 제주도에서 올라와 몇 달을 더 백수처럼 지내다 이 회사에 취직하고 난 몇일 후 받은 메일이다. 


내가 처음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 나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취직을 했고, 내가 해보고 싶은 일들을 마음 껏 할 수 있도록 나를 믿어주는 대표가 있었다. 동료들은 내가 낙하산이라고 수근대며 나를 의심하기 바빴지만, 나는 나의 취직을 누구에게 부탁한 적도 없고, 나의 경력으로 입사했으며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행동했고, 밀어부쳤다. 그런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나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면서 동시에 오만했던 것 같다.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월등하다고 생각했다. 자신감을 넘어 교만했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자신감에 차 있었다. 지금과는 다른 자아를 장착하고 있었다. 


12년이 지났고, 3개월을 쉬었지만 나에게는 제주도에서와 같은 단절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홀몸이 아니다.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애저녁에 회사를 관두고 친구가 있는 미국으로 도피생활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남편과 공동체를 이루고 있고, 내가 삶을 단절하면 그 책임을 그가 지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는 없다. 회사원과 프리랜서 생활을 오가며, 단절로 분기점을 나누는 인생을 산 내가 물리적 단절이 아닌, 새로운 단절을 발견할 수 있을까? 매일이 부활의 삶이라는 신앙인의 삶을 살고 있고 어쩌면 그 영향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물리적 단절 없이도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앉아 있어도 다리가 휘고 무너진다. 그런 환상이 생긴다. 감정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회사에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 내가 새로운 삶을 모색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 아닐까. 경계를 건너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서 내가 왜 이렇게 이 자리에 무너져 있는지 스스로 자책하는 시간을 길게 가져서 내게 찾아온 병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움직여야 하지 않는가. 이곳에서도 새 삶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해보라도 다들 말하지만 나란 사람은 그게 이리도 잘 되지 않는데, 물리적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나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남편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그와 떨어지기 싫어서 휴가 기간동안에도 어디에도 가지 않았는데, 이제와서 물리적인 단절을 필요로 하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4월에 있을 세례식이 새로운 계기가 되어줄까? 나는 단절을 하고 나면 나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될까? 스스로 살아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될까? 무엇에도 형체도 무엇도 없이 살아가는 것만 같은 나를 다시 존재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지금 죽고싶지 않다고 앞으로도 죽고싶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 있을까? 삶의 불길이 사그라든 것 같은 이 기분을 어떻게 떨치고 다시 불꽃으로 타오르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약물, 운동, 일기, 루틴, 기도, 상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서 진짜 경계를 넘어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경계를 넘어야 할까? 삶의 균형을 맞추며 넘어가야하는 그 경계는 어디에 있는 걸까? 에너지가 좋은 할머니로 늙고 싶은데 나는 지금 에너지가 좋은 중년은 아닌 것 같다. 에너지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을 해야 그렇게 도리 수 있을까? 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있지만 일정 분기점을 넘기지 않고 문턱에서 포기해버리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닐까?


주변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회사를 나오라고 할 때, 못 나가고 미련을 붙들고 있었던 결과, 사람들은 지난 시간동안 성장해있는데 나는 제 자리에 있어서 더 갈 곳이 없어져버린 것만 같은 기분. 그러니 이제라도 나가야한다는 생각. 하지만 여전히 함부로 나갈 수 없는 상황. 여전히 혼자였다면 당장 그만두고 안 되면 죽어버리지 뭐. 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젠 그런 생각을 할 수 없게된 지금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주식투자 하듯이 내게도 시간을 투자했어야 하는데 바닥이 드러나고 땅이 파일 때까지 긁어서 쓰고, 더 이상 남아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까지 이렇게 끝까지 해보고 그만둬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밉다. 

작가의 이전글 죽고싶단 생각이 안 들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