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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J Apr 11. 2024

고공행진 속 저속비행

[우울증 환자 생존기] 나는 괜찮은걸까?

친구들을 만났다. 내 얼굴에서 행복 빛이 난다고 했다.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면서. 회사를 그만두기로 하고 자주 듣는 말이다. 마음이 편안한 것이 티가 나나보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하고 컨디션 점수가 40점대에서 50점까지 올랐다. 절로 콧노래가 나고 기분이 한껏 좋았다. 내가 회사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는 사람들이 모두 나의 퇴사결정을 축하해주었다. 그들의 축하가 내게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계속되는 고공행진 속에 다른 속도의 비행이 들어왔다. 기분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월요일만 되면 회사에 출근하기가 그렇게 어렵다. 이번주 월요일에도 오후에 출근했다. 이렇게 출근을 싫어하고 잠만 자고 싶어하는 나를 보면서 '나 괜찮은 것이 아니었나?' 질문하게 된다. 좋은 마음 속에 조금씩 지쳐가는 내가 보인다. 기도하는 것도 지치고, 일기 쓰는 것도 지치고, 일상의 소소한 일들도 지친다. 이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런 식이면 나는 출근하지 않더라도 좋아지지 않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진다. 회사를 그만두면 괜찮아져야 한다는 의무감에 벌써 지쳐버리는 걸까?


우울증의 끝은 없는걸까? 새로운 일을 찾아나서야 하고 뭔가를 해야 하는데 몸도 마음도 움직이지를 않는다. 세바시에 와이프의 7년간의 투병생활을 이겨낸 남편이 나왔다. 영양제도 먹고 운동도 하고 약도 먹고 치료도 받고 조금씩 나아졌단다. 나의 긴 투병생활에도 끝이 있을까? 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는데 나는 지금 왜 또 가라앉는 것일까?


바다 속에 있는 기분이다. 떠올라도 떠올라도 끝이 없이 깜깜한 기분. 또 자살방법을 찾고 있는 내가 보인다. 저녁에 만난 신랑이 이번에도 나의 변화를 알아차린다. 그리고는 정리되지 않는 집안 일에 조금 화를 낸다. 나는 화를 내는 그가 나를 미워할까봐 무섭기도 하고, 나의 상태를 고려해주지 않은 그에게 서운하기도 하고, 그가 이제는 힘들고 지칠 때가 되었다 싶어 안타깝기도 하고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기분이 올라오지 않고 저속비행을 하는 이유를 되짚어 본다. 새로 시작할 일에 마음이 크게 동하지 않는데 무언가를 해야 해서 스트레스를 받은 걸까? 나는 더 이상 일하기를 싫어하는 걸까? 집에 있으면 심심해하면서?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건 그냥 하는 말일까? 그럼에도 새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는 계속하고? 


하루 이틀이 지나고 기분이 조금 올라왔다. 하지만 집중력은 많이 떨어졌다. 무엇이든 1시간을 넘어가지 못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보고 나서도 봤으면 이제 일어날까? 싶은 생각이 들고 진득하게 뭘 하지 못한다. 집중력이 이렇게 떨어지는 건 울증과 조증 모두에서 나타나는 것이라 이것만으로는 어떻다고 가늠할 수가 없다. 한동안 책을 보았는데 다시 책을 못 읽는 시기가 왔다. 이러니까 일에 집중하는 건 더 어렵다. 


새로운 일자리 기회가 와도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의욕이 생기다가도 내가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새로운 일자리는 계속 찾고 싶고, 일자리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다. 생각만 있다. 우울증이 나의 삶에 동반자처럼 이렇게 따라다니는 것이 버겁기도 하고, 막상 또 우울증 없은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갑자기 당황스럽기도 하다. 우울증에 기대어 하기 싫은 일을 안 하고 삶의 핑계 아닌 핑계로 살다가 더 이상 핑계댈 곳이 없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다. 


너무 오래 우울증을 앓은 사람의 이런 이중적인 마음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어이가 없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다. 다른 오랜 우울증 환자들을 어떻게 이 시기를 거쳤는지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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