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수리 Jun 14. 2024

씩씩하게 엄마 배웅

9년 만에 알게 된 엄마의 눈물

남동생 결혼식을 앞두고 고향에서 엄마가 올라왔다. 자기 전에 누워서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손님맞이랑 결혼식 식순, 혼주가 할 일 등등. 그리고 엄마에게 결혼식 끝나면 며칠 더 딸네 있다 가라고 했다. 자식들 모두 보낸 엄마가 마음 쓰인 탓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고집을 부렸다. 결혼식 끝나자마자 고향 친구들이랑 내려가겠노라고. “친구들이 차 대절해서 온다네. 주변에 많이 안 알렸어. 딱 엄마 동창들만 오라 했거든. 같이 내려갈 거야. 친구들 와줘서 고맙다고, 가면서 밥도 사고 해야지. 사람이 그리 챙겨야 된다.”


멀리 살아서 자주 못 만나는 엄마, 이왕 딸네 집에 왔으니 며칠 놀다 가도 좋지 않겠냐고. 어차피 고향에서 자주 보는 친구들이니 제대로 자리 마련해서 대접해도 충분하지 않겠냐고. 굳이 빠듯하게 가려는 엄마에게 나는 내심 서운했다. 그걸로 한참 실랑이하다가 뒤늦게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 혼자 내려가기 싫어서 그래. 너 결혼하던 날, 버스 타고 가면서 내내 울었어. 하필 그때 사정이 여의찮아서 뭘 해주지도 못했잖아. 그거는 엄마가 평생 갚을 거야.” 그 말에 울컥해서 대꾸했다. “엄마, 다 지난 일을. 속상하게 뭘 또 갚는다고 그래. 엄마 혼자 우리 잘 키웠으면 됐지. 진짜 얼마나 힘들었냐.” 그러다 결국, 엄마 말에 울어버렸다. “대관령 고갯길은 넘어도 넘어도 그리 길더라. 4시간을 울면서 갔다. 미안해서. 쓸쓸해서. 너무 슬퍼서.”


9년 전 나의 결혼식. 혼주석에 혼자 앉아 딸을 보던 엄마. 결혼식장 불이 꺼지고, 손님들 떠나보내고, 고왔던 한복 벗어 반납하고, 신혼여행 잘 다녀오라 딸이랑 사위 안아주고, 터미널까지 데려다준 아들이랑 인사하고, 엄마는 심야버스에 올라탔다. 초겨울 밤, 사람들 꾸벅꾸벅 졸다 잠든 버스에서 엄마만 울었다. 굽이굽이 대관령을 넘어가던 심야버스에서 덜컹거리며 울던 엄마는 얼마나 헛헛하고 쓸쓸하고 추웠을까. 9년 동안 그걸 몰랐다. 부모의 깊은 속을 자식은 암만 해도 모른다.


남동생의 결혼식. 엄마는 이번에도 혼주석에 혼자 앉아 아들을 보냈다. 행복하게 잘살아라. 아들의 등을 밀어주는 엄마의 등을 바라보며, 나도 잘 보내줘야지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씩씩하게 엄마 배웅.


“숙아, 타라!” 여장부 친구가 핸들을 걸쳐 잡고 운전석 창문을 내리며 외쳤다. 12인승 승합차 문이 드르륵 열렸다. 마지막까지 기다려준 엄마의 친구들. 기쁜 자리에 술 한 잔씩 얼큰히 마시고는 발그레하게 웃고 있었다. “여와 앉아라.” 다닥다닥 붙어 앉은 친구들이 센터 자리로 엄마를 불렀다. “야야, 너무 기다렸지.” 엄마가 들뜬 목소리로 어린애처럼 폴짝 올라탔다. “딸내미 고생했대이. 엄만 여 맡겨라.” 친구들이 날 보며 와하하 웃었다. 그 시절 국민학생들처럼 왜들 이리도 천진하고 명랑한지. 엄마의 정다운 친구들이 고마워서 찡했다.


“딸아, 엄마 간다.” 엄마가 웃었다. 나도 힘껏 웃었다. 통통 튀는 듯 달려가는 승합차 꽁무니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엄마 잘 가. 훌훌 즐겁게 가. (24. 06. 14)



동아일보 [고수리의 관계의 재발견]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을 활짝 열어주는 한마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