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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유정 Apr 20. 2023

3. 두 번이나 차도에 뛰어들다

미국대륙횡단도 아니고 8차선 도로를 횡단하다니

휴..

내 반려견과의 생활 23년을 돌이켜보고 생각나는 에피소드들이 왜 죄다 웃긴 이야기보단 가슴 쓸어내릴 일이나 내 실수로 또는 부주의로 일어난 일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글을 쓰며 깨닫고 있다.


나는 이 에피소드들을 쓰면 쓸수록 참 나쁘거나 한심하고 어리석은 반려인이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이라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에피소드를 비롯하여 이 아이들과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기록은 꼭 남기고 싶다. 이 기록이 끝날 때쯤이면 서운한 마음이 들까? 개운하고 가벼운 마음이 들까? 사실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때쯤이면 나는 지금의 슬픔에서 조금은 가벼워져있을 것이다.


뭉실이가 떠난 지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 여가 지났다. 한 달을 어찌 살았는지도 모르겠는데 말이다.

울었다가, 웃었다가 밤에 자다 떠오르면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다.


여전히 보고 싶고 그리운 뭉실이의 이야기를 하면 오늘 밤 또 잠을 설칠 것 같아 오늘은 긴 서론 뒤에 짧은 뭉치의 에피소드를 써봐야겠다.


뭉치를 처음 키울 때만 해도 목줄이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동네에는 목줄을 하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지금이야 그런 걸 보면 당장 신고라도 할 기세지만, 그 당시에는 나도 가끔 집 앞에서 뭉치를 내려주고 집 대문을 찾아가는지 시험을 했다.  


어느 날인가 뭉치가 좋아하는 내 친한 동생 V가 놀러 왔다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배웅을 해주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바로 대문이 보이는 골목 어귀에서 뭉치를 살짝 내려주고(아무도 없어서) 대문 앞까지 걸었다.


내려서 세 발짝 정도 뗐을까? 갑자기 몸을 180도로 돌려서 뒤로 달려가는 뭉치를 보고 너무 놀라 따라갔는데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전에도 가끔 집으로 안 들어가고 골목 위쪽가지 갔다 돌아온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그래도 그땐 금방 돌아왔고 뭉치는 예전부터 집을 엄청 잘 찾아오는 아이였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도 돌아오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캄캄한 밤에 뭉치는 흔적조차 없이 마치 마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사라졌다.


나는 골목을 다 헤매고 V가 차를 타러 떠난 큰 길가까지 나가봤지만 뭉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찾아 헤매었지만 뭉치는 여전히 없었고 나는 머리가 하얘지면서 '아, 진짜 이제 뭉치를 잃어버렸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전에 뭉치 녀석의 성격을 내가 몰랐던 것도 아니고 수컷이라 그런가 가끔 자기 맘대로 행동하고, 내가 오라고 하면 한 번에 잘 오지 않는 녀석이었는데 난 뭘 믿고 바닥에 내려줬을까. 정말 후회해 봤자 소용없는 후회를 그렇게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큰 길가에 한 번만 더 가봐야지 하고 다시 갔던 곳으로 나가보았다. 아뿔싸! 우리 뭉치가 8차선 중앙분리대 화단 위에  서있는 게 아닌가?


마침 50미터쯤 위에 횡단보도 신호등이 빨간불이라 차들이 멈춰 서 있었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뭉치야!!!!!!"하고 불렀다. 내 목소리를 듣고 뭉치가 부리나케 내쪽으로 달려왔다. 아마 자기도 당황하고 있었는데 내 목소리가 들려서 앞도 뒤도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달려온 것 같았다. 한 번만에 불러서 오는 녀석이 아닌데 그날은 한방에 내 품에 안겼다.


나는 혹시라도 근처에 왔다가 도망갈까 봐 내 품에 안길 때까지 가만히 뭉치를 기다려주었다. 뭉치가 내 품에 안기자 마자 나는 " 야, 이놈 새끼야. 니 죽고 싶나? 어!! 궁둥이 좀 맞자."라고 소리치며 진짜 엉덩이를 찰싹 때려주었다.


너무 다행스럽고 너무 감사한데 왜 때렸을까? 안도의 마음을 그렇게밖에 표현 못하는 나 자신이 싫었지만, 그래도 일단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 때문에 갑자기 집 앞에서 도망친 뭉치의 행동이 이제야 참았던 감정을 터뜨리게 했나 보다.


나중에 8차선 횡단사건을 언니한테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때 더 충격적인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뭉치가 훨씬 오래전에 어렸을 때, 내가 이사를 하기 위해 잠깐 언니에게 뭉치를 맡겼는데(아마 애견삽에 데려다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개를 별로 안 좋아하고 다룰 줄 몰라서 안고 가다가 놓쳐서 뭉치가 또 차도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때는 차들이 달리고 있었는데 정말 천만다행으로 뭉치 앞에 차가 서서 어쩔 줄 몰라하는 언니 대신 운전자가 뭉치를 안아서 언니에게 안겨주었다고 한다.


언니는 그때의 일을 비밀로 몇 년간 간직하고 있었고, 내가 이 8차선 횡단 사건을 말하고 나니 그때 고백한 사건이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이고 다행인 일이지만, 정말 자칫 잘못해서 끔찍한 사고라도 났다면 아마 우린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건 도로에 두 번이나 뛰어든 뭉치는 그 뒤로 목줄 없이는 외출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또 하나를 배우며 조금 더 성숙한 반려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아참, 뭉치가 왜 그 8차선 도로를 건넜을까 나중에 생각해 봤는데, 뭉치가 좋아했던 V가 그 도로 건너에서 택시를 탔기 때문이 아닐까로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되었다. 알다가도 모를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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