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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Jan 04. 2024

'J형 인간'의 새해맞이 방법

<우리문화> 1월호 일상공감 코너에 자유기고한 글입니다

■ 한국문화원연합회 출판편집실에서 원고 청탁받아 <우리 문화> 1월호 일상공감 코너에 자유기고한 글입니다.






“옥돌여행님, J죠?”

       어느 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지인이 내게 물었다. 뭐든 계획하길 좋아하는 나를 지켜보며 MBTI 성격유형에 관해 묻는 말이었다. 나는 상대방의 확고한 질문에 호기심이 생겨 MBTI 진단을 다시 해보았다. 몇 년 새 간격을 두고 세 번 정도 테스트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일관되게 나왔던 항목이 J였다. 성격유형을 판단하는 E와 I, S와 N, T와 F 사이에서 경계를 넘나들었지만 유일하게 P보다 J가 분명한 계획형 인간이었다. J는 ‘판단형’으로 ‘분명한 목적과 방향, 기한 엄수, 사전계획, 체계적’이라는 유형 설명을 읽으며 스스로 ‘J형 인간’이라고 인정했다.     

       ‘J형 인간’으로 거듭난 나의 새해맞이는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연중행사다. 이를 위해 12월 한 달 동안 느슨하게 마음 산책하며 나만의 사전 준비를 한다. 일상의 루틴을 유지하며 애피타이저 정도의 자그마한 시간을 매일 할애하는 것이다. 계절 옷을 정리하듯 한 해 동안 진행해 온 일들을 하나하나 리뷰(review)하며 곱씹는다. 새해에도 이어가야 할 일과 놓고 가야 할 일, 새롭게 추가해야 할 일을 이리저리 배치한다. 퍼즐 조각처럼 자리 잡힌 계획들을 휴대전화 달력에 연간 일정으로 기록하고 짬짬이 업데이트한다. 그러고 나면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진다.     

       이렇게 새해를 계획해 온 지 올해로 네 해째다. 시작점은 ‘코로나-19’로 인한 삶의 급격한 변화였다. 사회적 변화 속에서 내 삶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물리적 거리두기’로 대면 중심이었던 자영업이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시간의 여백이 생겼다. 오래도록 먹고사는 일에 꽂혀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을 돌아보았다. 노트북 앞에 앉아 다양한 정보를 검색하며 새로운 일들에 호기심이 생겼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최선일까, 내 꿈이 뭐였더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오래전에 두 갈래 길에서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길이 떠올랐다. 20년 전으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30대 초반이었다. 나는 경단녀로 네 살 난 아들을 키우며 화병 속에 꽂아 둔 생화처럼 시들어 가고 있었다. 무엇하나 뜻대로 온전히 도전해 볼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엄마’라는 역할에 자꾸만 발이 걸려 넘어졌다. 20대에 문학을 전공하고 대기업 홍보실에서 사보 편집 업무를 담당했던 경력을 이어가지 못하고 표류 중이었다. 전공을 살려 수입을 창출하며 경력을 쌓는 일이 막연해 보였다. 결혼과 육아라는 인생의 변수를 껴안으며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나아갔다. 우연히 찾아온 자영업의 기회를 선택한 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경제적인 소득이 마음을 붙들었다. 그리고 세월이 쏜살같이 흘렀다. 나는 코로나-19라는 사회적인 변화 속에서 강제로 주어진 시간을 사유하며 엉뚱한 곳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마음을 자각하자 지금껏 덮어두었던 감정이 요동쳤다. 책과 글의 세계에 대한 열망이었다. 가장 손쉽게 진입할 수 있는 블로그 문을 활짝 열었다. 블로그 이웃의 글을 읽고 벤치마킹하며 온라인 책모임,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다. 오래전에 떠나왔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새해에도 꾸준히 이어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러려면 지속할 수 있는 나만의 루틴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1년이 흐른 후에 50개의 서평이 쌓인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다독였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혼자만의 약속을 지켜나가며 글 쓰는 근육을 키웠다. 그렇게 20년 12월은 책과 글의 세계에 씨앗을 뿌린 한 달이었고, 책임감이 강한 자신에게 과제를 던져주며 21년 한 해 근접한 목표에 다다랐다. 더불어 나만의 글 쓰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계획은 또 다른 계획을 낳는다. 매년 새해 계획에 곁가지가 붙으며 올해는 예전보다 촘촘하고 풍성한 새해를 맞았다. 꾸준한 글쓰기의 힘이 준 근력으로 두 권의 책을 공저 출간했다. 블로그에서 브런치 작가로 글 쓰는 공간을 확장하며 <옥돌의 서평집> 매거진에 100개가 넘는 서평 글을 모았다. 이를 계기로 올 한 해 월간지에 서평을 연재한다. 새해에는 서평 쓰기라는 한 가지 목표에서 에세이와 단편소설 쓰기로 확장해 글쓰기 3종 세트를 일상의 루틴으로 만들어 가려고 한다. 이렇게 계획의 계단을 꾹꾹 눌러 밟으며 한달 한달 채워가다 보면 일 년 후 지금보다 훨씬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물론 인생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 길 가운데 막다른 길을 만나게 될 수도 있고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새해를 계획하는 일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계획한 길을 좌표 삼아 계획 위에 계획을 덧칠하며 걸어갈 것이다. ‘J형 인간’이 준비한 새해의 꽉 찬 일정을 가슴에 품고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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