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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Jan 13. 2024

내 몸 친구들

내 몸의 미니멀리즘을 변화시킨 디바이스 친구들






나는 몸을 둘러싼 많은 부분에서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내 몸을 돋보이게 하는 패션 소품과 성형 미용, 몸의 치료를 돕는 디바이스 기기, 운동기구 등을 곁에 두지 않는다. 자연미를 추구한다고 말하면 너무 거창하고 그냥 거추장스럽다. 그저 몸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온 습관이 자연스레 취향을 만들었다.


흔하게 몸을 치장하는 액세서리만 해도 그렇다. 학창 시절은 물론이고 경제활동을 시작한 이후 명품 의류라던가 14k 이상의 보석류 구매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결혼할 때 예물로 받았던 다이아 반지가 가장 고가의 보석이었다. 그마저도 결혼 7년 차엔가 도둑맞았다. 연애 시절 선물 받았던 소소한 귀금속류까지 두 번에 걸쳐 몽땅 쓸어갔다. 결혼반지는 평소에 끼고 다니지 않아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좀도둑이 어려운 살림에 보태 썼으려니 생각하고 털어버렸다. 가끔은 남편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다이아 반지를 보며 ‘아, 결혼반지가 있었지’라고, 잠시 떠올리는 정도였다.


귀도 뚫지 않아서 지인들이 간혹 액세서리 이야기할 때면 나를 천연기념물 보듯 쳐다봤다. 귀에 구멍이 뻥 뚫리는 순간을 상상하면 겁이 다. 귀걸이를 하고 다니다가 무언가에 걸려 잡아당겨질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가벼운 손목시계와 목폴라 위에 이미테이션 목걸이 정도로 변화를 주었다. 관심이 없다 보니 액세서리에 좀처럼 돈을 쓰지 않았다. 목욕탕이나 사우나에 가서 몸을 드러내는 것도 내켜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까이하는 것들하고 친하지 않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데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몸이 추구하는 미니멀리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들이 생겨났다. 우리 집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디바이스 기기가 바로 그것이다. 1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른쪽 어깨에 책 서너 권 무게의 가방을 메고 장을 보면서 양손에 짐이 늘었다. 좁은 어깨 아래로 가방끈이 자꾸만 미끄러져 내렸다. 어깨에 힘을 주며 끌어올렸다. 무게를 견디며 계단을 올라와 2층 현관문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안도와 함께 악, 소리가 새어 나왔다. 찌를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어깨 마디와 마디를 잇는 어딘가 끊어진 느낌이었다. 밤새 통증으로 끙끙 앓았다. 남편한테 아픔을 호소했지만, 내가 느끼는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일 병원에 가봐’라는 소리만 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통증의 강도만큼 서운한 마음도 눈물샘을 자극했다.


다음 날 정형외과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어깨 인대가 늘어났다며, “안 써야 낫습니다.”라고 무심히 말했다. 물리치료를 받은 후 몸은 회복되었지만, 아팠던 순간에 느꼈던 고통은 뇌리에 남았다. 아프면 나만 서럽다는 생각이 몸을 보살피고자 하는 마음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맘처럼 쉽지 않았다. 주부 생활과 사회생활을 지속하는 한 몸을 안 쓸 수는 없었다. 오른쪽 어깨가 회복되면 한 해 지나고 왼쪽 어깨가 아팠고, 어깨가 괜찮으면 또 해가 바뀌어 손가락이 아팠다. 어느 해부터는 눈의 피로감이 높아지면서 그나마 좋았던 시력도 나빠졌다. 아플 때마다 걱정이 머릿속을 장악하며 두려움이 엄습했다. 주변에 아프다고 얘기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자기 관리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조심스럽고 위축되었다.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며 땜질하듯 몇 년을 보냈다.


그러다가 베트남 다낭 여행 갔을 때였다. 여행 프로그램에 들어가 있는 전신 마사지를 받게 되었다. 내 몸을 훑는 사람의 손길이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뼈 마디마디가 유연해지고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면서 몸과 마음이 한결 개운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TV를 보다가 홈쇼핑 채널에서 안마의자를 광고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의 손길보다 불필요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안마의자로 몸을 돌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렇게 안마의자를 집에 들여놓고 그때그때 피로를 풀어주었더니, 남편한테 서운해할 일도 없어졌고 병원 갈 일도 줄었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예전보다 활기가 넘쳤다. 그 느낌을 알게 되면서 몇 년에 걸쳐 종류별로 디바이스가 늘었다. 발 마사지, 눈 디바이스, 손 치료기 등등 열 손가락을 채울 정도가 되었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눈 안마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글을 쓰고 난 후에는 손 치료기로 손의 피로를 풀어줄 생각이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안마의자에 앉아 온몸의 근육을 이완시켜 주고, 몸을 지탱하느라 고생한 두 발을 위해 발 마사지를 받을 것이다. 나이 들어감은 몸도 마음도 변화시키는 걸까. 여전히 패션 소품과 성형 미용, 운동기구 등과 친하지 않지만, 그 무리 중 하나였던 디바이스가 어느새 나의 일상에 꼭 필요한 물건으로 자리했다. 내 몸의 미니멀리즘을 변화시킨 게 취향이 아닌 나이 들어감이라는 사실이 서글프지만,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건강이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내 몸 친구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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