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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 영혼 May 05. 2023

비 오는 날 찐맛! 냉파 부침개

냉장고 정리는 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 아니라 이상하리만큼  당기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부침개와 막걸리다.

일기 예보가 다 맞는 것도 아니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것도 때가 있는 게 아니다. 하여 비는 언제 내릴지 모른다. 그러니 침개 재료를 미리 준비해 둘 수도 없다.


책을 읽다가 창밖을 보니 갑자기 비가 내린다. 순간 오늘 한 끼는 밥 대신 막걸리에 부침개라며 몸이 신호를 보낸다. 막걸리야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편의점에 잠깐 다녀오면 된다지만 부침개 재료 사겠다고 단지 밖으로 나서기에는 귀차니즘이 발동한다. 궁하면 통한다고 냉파(냉장고 속 파헤치기) 작업에 돌입한다.


채소칸을 뒤져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부추. 생기를 잃고 축 늘어져도 반갑다. 싹이 나서 다시 밭으로 돌아가기 직전의 양파와 당근, 된장찌개 해 먹고 남은 애호박 반토막,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참타리버섯 한팩. 흠 이 정도면 훌륭한데! 냉동실에 비치된 청양고추와 홍고추를 더한다. 부침가루는 일용할 양식처럼 떨어지기 전 거의 준비해 두는 편이다.


버섯은 살짝 데쳐서 마늘 간장 참기름이나 들기름 넣고 버무리면 더 맛있겠지만 생략하고 데칠 때 소금 약간 넣어준다. 야채 손질하고 씻고 썰기. 전부 준비하고 보니 양이 푸짐하다. 부침가루는 조금만 풀어준다. 이때 부침가루보다 야채가 많아 부칠 때 잘 붙으라고 달걀도 하나 넣어 같이 풀어준다. 김치 부침개라면 부침가루 풀어줄 때 설탕을 약간 넣어주면 한결 맛있다. 하지만 위 재료 중 양파 당근 호박은 익으면 모두 단맛을 내는 재료들이다. 그러니 굳이 설탕을 넣지 않아도 된다. 이제 준비한 재료 넣고 섞어주면 준비 끝.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군 후 얇게 반죽을 올려 노릇노릇 익어가니 냄새부터 빠져든다. 한쪽 귀퉁이를 떼어내 맛을 본다. 바싹 보들 고소한 세상 하나밖에 없는 찐맛! 한 장 부쳐놓고 얼른 간잠 양념을 만든다. 청양고추 홍고추 잘게 썰고 고춧가루 다진 마늘 깨소금 참기름에 간장으로 간을 한다. 부드럽고 바싹한 맛의 부침개를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한결 맛이 살아난다.


막걸리에 두부전 풋고추 더해지면 금상첨화!

밥상으로 치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지 않은가.

조금 전 냉장고 속에서 발견한 두부 한모와 풋고추가 생각났다. 허허 막걸리 안주 궁합에 딱 맞네 그려. 둘이 먹는데 이미 야채 부침개만으로도 양이 많다. 그런들 어떠리 남으면 밥반찬 하면 되지.


부침개는 식어도 맛있다. 막걸리 안주로는 큰 접시에 한 장씩 올려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갈라가며 따끈하게 즐기는 게 제격이다. 밥반찬으로는 식은 전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작은 접시에 내놓으면 같은 음식 다른 맛이 된다.


일단 달걀 풀어서 두부 부침 추가하고 풋고추도 올린다. 식당에 앉아 요것조것 주문해 막걸리 한 잔 하는 기분!  

밥반찬으로 변신한 부침개

냉장고를 뒤져도 특별히 나오는 게 없었다면 묵은지로 김치전을 만들었을게다. 어떻게든 부침개 먹고 싶다는 생각은 꺾이지 않았을 테니까.


오는 날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 창밖 풍경 배경 삼아 빗소리 들으며 부침개 풋고추 두부전 안주에 짠! 찌그러진 양은 막걸리 잔을 부딪친다. 빗소리와 지글지글 팬에서 부침개 익어가는 소리도 조화롭다. 이럴 땐 S와의 대화도 편안한 친구처럼 사이좋고 자연스럽게 흐른다.


행복이 별거더냐. 이만하면 세상 더 부러울 것 없는 인생 달달한 순간이다. 비 오는 날 냉장고 속 파헤쳐 만든 부침개는 세상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레시피이자 둘이 먹다 한 사람 없어져도 모를 맛이다. 더불어 절로 해결된 냉장고 정리는 덤이니 오늘 하루도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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