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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 영혼 Apr 02. 2023

꽃구경 보다 정리의 마법으로 봄맞이

내 삶을 변화시킨 정리의 마법

순서도 없이 여기저기 폭죽 터지듯 꽃망울이 터진다. 봄꽃들은 피고 보니 기후 변화에 속았다 싶어 혼란스러웠을게다. 거기다 코로나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이 밀려드는 광경에 화들짝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

꽃보다 사람이 더 많은 명소들!


봄꽃 감상일랑 주변 가까운 곳을 산책하며 조용히 즐기기로 했다. 올봄 나의 봄맞이는 꽃구경 대신 정리의 마법에 빠져 보기다.

곤도 마리에의 책 <정리의 힘>과 <정리의 기술>을 통해 정리 순서나 옷 개는 방법 등을 익힌 대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우선 내  옷부터 몽땅 꺼내 놓았다. 산더미처럼 쌓인 옷을 보고 놀라움을 넘어 충격 그 자체였다. 그렇다고 내가 멋 부리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쇼핑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다. 몇 년째 옷을 산 기억도 없다. 아이들이 기념일에 사준 한 두벌 정도가 전부이다. 그런데 대체 이 많은 옷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 정리를 했고 버리기도 했건만 이럴 수가;; 그랬구나 그래서 옷을 한 자리에 전부 모아놓으라고 했었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모아보지 않으면 자신이 얼마나 많은 옷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시작부터 그녀의 정리 방법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산처럼 쌓인 옷을 보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세 좋게 일을 벌여 놨으니 시작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정리하다 보니 분명 어딘가에 있을 텐데 필요할 때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던 것도 나온다. 사놓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비싸게 주고 산 브랜드라서 언젠가 입을 거라며 남겨둔 옷. 이런저런 이유로 남겨진 옷들을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버리면서 인사도 잊지 않았다. 한때 즐겨 입었던 옷에게는 '그동안 고마웠어' 사놓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에게는 '미안해 다른 주인 만나 날개를 펼치렴' 하며 버릴 옷과 남길 옷을 정리해 나갔다. 어떤 옷에는 여행의 추억이 담겨 있기도 했다. 값이 비싸다고 오래 입는 건 아니다. 예전에 중국 운남성 여행을 하며 소수민족이 수작업으로 수를 놓은 면 셔츠를 아주 저렴하게 구매한 게 있다. 하얀색 면에 부분 물을 들이고 수를 놓았는데 얼마나 편하고 이국적인 멋이 있던지 아주 오랫동안 즐겨 입었다. 그야말로 낡을 때까지 입었던 옷인데 이제 보내야 할 때가 되니 서운하기까지 하다.


나누는 작업을 하다 보니 거실 전체를 차지하고도 부족할 정도다. 아침에 시작한 작업은 점심때가 될 때까지 나누는 작업조차 끝나지 않았고 허리며 팔다리까지 근육통이 생겼다.

오후로 넘어가며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이 버렸음에도 개고 자리 정해 정리 하기까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결국 하루 만에 옷 정리를 끝내지 못하고 다음날로 넘겼다. 그렇게 하루를 넘겨 다음날 아침까지 내 옷정리를 끝냈다. 이번엔 남편 옷이다. 남편은 3시간 만에 간단하게 정리를 끝냈다. 내가 가진 옷과 비교되어 부끄럽기도 했고 내 옷들도 언젠가 저만큼 줄여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각자 옷 정리를 끝내고 이번엔 책 정리다. 책은 둘이서 함께 했다. 방과 거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책들을 모두 거실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책장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소설 수필집 등 일반 서적과 시집, 전문 서적으로 나누어 정리했다. 버린 책들도 상당했으니 그동안 숨도 못 쉬고 먼지 쌓인 책꽂이에서 고생했을 책들에게 미안했다. 지치면 더 이상 진행할 의욕이 상실될 수도 있어 둘째 날은 책 정리까지만 하기로 했다.


곤도 마리에가 얘기한 정리의 순서에 따라 다음날은 소품 정리다. 장식장과 서랍장 창고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 놓았다. 아이들이 사용했던 악기들이며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 중 쓸만한 것들은 당근 마켓에 올리기도 했다. 소품 정리는 이틀이 걸리고도 끝내지 못했다. 지금까지 4일이 걸렸다.


다용도실이 남아 있고 추억의 물건, 주방과 화장실이 남아 있다. 주방 정리가 옷만큼이나 힘들 것 같다. 정리에만 몰두할 수 없는 일상이지만 빠른 시일 내에 모든 정리를 끝낼 생각이다. 최대한 한 달 안으로 정리를 마치려고 한다. 우리 부부가 정리를 끝낸다 해도 완벽하지는 않다. 따로 독립해 살지만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직장과 학교 공부를 위해 자취를 하고 있는 두 아이의 옷과 책들이 남아 있어서다. 추억의 물건들에는 사진도 포함되어 있으니 온 가족이 모였을 때 모아놓고 함께 추억의 즐거움도 누리며 정리할 생각이다. 아이들에게도 친정과 시댁 단톡방에도 우리가 본 넷플릭스 시리즈와 책을 공유하며 적극 추천했다.


힘든 작업이었지만 이미 정리를 끝낸 부분만으로도 일상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물건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 소유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집안 구석구석에 쌓여 있는 물건만큼이나 먼지도 쌓여 있다는 사실. 그 먼지로부터 해방되어 건강한 생활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소유로 살아갈 수는 없지만 조금 불편한 삶일지라도 적게 소유하겠다는 내 삶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물건 정리를 하고 나니 마음 정리가 절로 따라왔다.  정리된 생활공간을 둘러보는 마음이 봄날의 화사한 꽃을 마주하는 만큼이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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