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도 비염은 있었는데, 요즘은 그 증상이 더 심해졌다.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한 번 훅 털기만 해도 콧물이 줄줄, 재채기가 쉴 새 없이 나왔다. 코안에 콧물이 가득해서, 휴지를 뜯어 코를 팽 풀어 보았는데, 그 휴지의 먼지 때문에 다시 재채기가 쉴 새 없이 나왔다. 코밑이 헐어서 새빨개지고, 코안은 헐어서 쓰라렸다. 먼지가 살랑살랑 내 코를 건드리고, 내 집중력도 건드리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요즘 미세먼지 농도가 높았다고 하는데, 먼지가 많아서 내 비염이 더 심해졌다고 생각하니, 주말에 잠깐 내린 비가 참으로 반가웠다. 촉촉이 비가 내리고 나니, 먼지도 자연스럽게 좀 줄어든 것 같았다. 이렇게 먼지가 사라질 정도로 비가 약간 내리는 상황을 ‘먼지잼’이라고 한다. 아기들이 두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잼잼’하는 것이 떠오르기도 하고, 예전에 유행했던 ‘탕진잼(자신의 경제적 한도 내에서 마음껏 낭비하며 느끼는 즐거움)’이 떠오르기도 하는 단어이다. 두 손을 오므리며 먼지를 잡아 버리는 ‘먼지잼’, 재채기가 멈춰 재미를 찾은 ‘먼지잼’이라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본다.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먼지 같은 것들이 내 삶을 괴롭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스치듯 마주한 상황에 상처받은 내 마음엔 미세한 스크래치가 생기고, 그 스크래치로 내 마음은 언제든 깨질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아 불안해진다. 하지만 반대의 상황도 있다고 위로하고 싶다. 때론 아주 작은, 먼지 같은 사소한 것이 날 재밌게 만들어 주기도 하니, 먼지같이 작은 재미, 이것이야말로 ‘먼지잼’이 아닐까.
아빠의 기일이 다가오는 관계로, 가족들이 모여 아빠가 잠들어 있는 봉안당에 다녀왔다. 우리 집은 기일이라고 해서 제사를 지내지도 않고, 다 같이 모여 예배를 드리지도 않는다. 특별한 행사는 없다. 때문에,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아빠의 이름 옆에 꽃을 달아 드리고, 아빠의 이름을 바라보며, 아빠와의 일화를 하나씩 얘기하는 것뿐이다.
“아빠는, 우리 교과서를 달력으로 싸주면서, 당신이 아주 매끄럽게 잘 쌌다며 의기양양하곤 했지.”
“누가 따라오는 것 같다고, 무서우니까 버스정류장에 마중 좀 나와달라고 하니까, 아빠가 주머니에 짱돌을 몇 개 넣어 왔지.”
뭐, 이런 일화들을 떠올렸다. 떠올린 일화들은 대개 먼지 같이 아주 작은 것들이어서, 다른 가족들은 “그랬어? 몰랐네”와 같이 반응할 만한, 당사자만 아는 것들이었다. 아빠가 미웠던 적도 있었지만, 다 같이 모여 아빠 얘기를 하니, 마음이 꽤 편안해졌다.
먼지 같은 재미는 또 있다. 조카가 언니 배 속에 있을 때,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겨난다는 사실에 들떴었는데, 들뜬 마음 너머에 궁금한 마음도 컸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애가 나올까, 누굴 닮았을까… 그러다 조카가 세상에 태어났는데, 상상 이상으로 너무나 귀여운 생명체가 우리에게 와 주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 엄마와 나는 어쭙잖은 멜로디에 즉흥 가사를 담아 노래를 불렀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생겼네. 예쁘게 생겼네. 요로케 생겼네. 귀엽게 생겼네….”
가사가 무한 증식되지만, 결국 내용은 하나인 그런 노래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킹 받는 멜로디의 노래이지만, 우리가 너무 많이 불러서 어느 날 조카가 그 노래를 따라불렀을 때는 마음이 빵 하고 부풀어 오르는 것 같은 행복을 느꼈다. 이것도 먼지잼….이라고 하려 했는데,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은 맞았지만, 우주같이 큰 행복을 맛보았던 순간이었다.
우주에서 보면 인간은 먼지 같은 존재라고 하는데, 사실 인간의 머릿속엔 우주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 먼지는 곧 우주만큼 큰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먼지 같은 사소한 순간에도 우주 같은 행복을 맛볼 줄 아는 날들이 계속되길 바라본다. 내 비염을 잠시나마 진정시켜 준 ‘먼지잼’처럼, 재미가 가득한 순간이 가득하길, 내가 그렇게 만들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