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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Nov 17. 2023

남아서 일하는 사람들은 시간 관리를 잘 못하는 것 같아

학교도 아니고 군대도 아닌 여기는 회사 - 2

Scene #2


김 수석님은 또 나간다. 회사 생활이 10년에 회사 골프 동호회 총무이니 찾아오는 동료들이 많다. 그때마다 커피 한잔 하시죠 하면서 나가서는 10분 ~ 20분씩 잡담을 하고 돌아온다. 자리로 돌아오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또 언제 라운딩 약속을 잡았나 보다.


하루 내내 그렇게 바쁜 김 수석은 오후부터 바쁘더니 퇴근 시간이 되면 자리에 꼭 앉아 있는다. 오후 5시 품질 관련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이 팀장님이 한숨을 푹 내쉬다가 사무실을 둘러보면서 묻는다.


"저녁 먹으러 같이 갈 사람?"


회사 식당에서 저녁이라니 야근하라는 소린가 하고 있는데 김 수석이 냉큼 팀장님 같이 가시죠 하면서 앞장선다. 집에서 밥 얻어먹기 힘들다면서 식당으로 가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하나둘씩 퇴근한다. 오전 내내 놀더니 밤만 되면 바쁘다고 그러고... 아 나는 6시 퇴근인데, 둘이 돌아와서 자리에 없다고 또 한소리 하면 어떡하지?

양경수 작가님 일러스트 - 야근은 정말 싫어요.


넌 지금 아이들링 하고 있는 거야.


같이 일했던 프랑스 동료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막 대리로 승진하고 프랑스 파견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매번 상사 지시를 받고 일을 하던 저는 난생처음 아무도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관여하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됐습니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도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아침에 출근하면 메일 좀 보다가 한국에서 저녁에 시작하는 프로야구 문자 중계도 흠칫흠칫 보면서 대충 오전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 시간으로 밤늦게 전달받은 급한 요청들이 오면 급하게 일을 시작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퇴근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내일 아침까지 한국으로 완료해서 보내야 하는 보고서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현지 매니저랑 하기로 한 일은 시작도 못했는데, 남아서 야근을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랑 같이 파견 나와 있던 선배님은 정반대였습니다. 늘 다섯 시 되면 칼퇴근하셨죠. 일처리도 깔끔하고 항상 여유 넘치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커피 한 잔 하는 자리에서 비결을 여쭈어 봤습니다.


"나도 처음에 파견 왔을 때 그랬어. 시간 관리를 스스로 없으니까. 한국 회사에서는 늘 지시를 받고 일했잖아. 여기는 온전히 혼자서 해야 하는데 예전 습관이 남아 있는 거지. 지시가 오면 바빠질 걸 알고 그러니까 어차피 나중에 바빠질 걸 대비해서 그전까지는 아이들링 (자동차가 달리기 전에 엔진만 켜서 Warm up 하는 단계) 하고 있는 거야. 이 대리도 그날 할 일을 스스로 예측하고 미리 시간 배분을 해 봐.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할 수 있을 거야." 



왜 긴급 지시는 퇴근 직전에 내려올까요.


회사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명확히 정해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실상은 일상적인 장기 업무가 반이라면, 외부의 요청으로 갑자기 처리해야 하는 일도 절반 정도 됩니다. 그리고 그런 급한 일들은 보통 업무시간 중에 있는 회의를 거쳐서 내려오니 오후 늦게 내려옵니다.


이런 회사의 생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바빠질 걸 아니까 그전엔 휴식을 취하곤 합니다. 자기 일이 딱 정해져 있지 않을수록, 긴박한 요청이 많은 환경일수록 이렇게 아이들링 하는 인원들이 많습니다. 업무의 특성이 그런 것이니 나쁘게 볼 문제는 아닐 겁니다.


문제는 급한 일 처리하느라 퇴근 시간 이후에도 야근을 꼭 해야 하는 분위기이거나, 남아서 이런 급한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만 열심히 일한다고 인정받는 상황이면 곤란합니다. 팀장 입장에서 저녁밥도 같이 먹어 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건 이해하지만 우리는 프로니까 결과로 이야기해야 하겠죠. 



오후에 바쁠 걸 안다면 미리 준비해 봅시다.


퇴근 시간과 긴급한 업무 지시가 계속 부딪쳐서 정시 퇴근할 때마다 눈치가 보인다면 본인이 하고 있는 업무를 한번 돌아봅시다. 지난 2주간 약 80여 시간 동안에 기한이 정해져 있어서 꾸준히 하면 되는 일과 갑작스러운 요청으로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비율을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는 겁니다. 


만약 일상적인 업무가 60% 정도라면 오후에 올 긴급한 요청에 대비해서 오전에 미리 본인의 주요 업무를 마무리해 둡니다. 급박한 일은 아무래도 신입보다 선임들에게 몰리기 마련입니다. 선임들이 아침에 좀 쉬고 오후의 결전을 준비하는 어수선한 분위기라도 나는 미리 내 몫을 해두고 빈자리를 마련해 두면 긴급한 지시가 와도 빨리 마무리할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긴급한 지시가 왔을 때는 빠른 대응이 필요한 만큼 정확히 상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시 사항을 들으면, 본인이 이해한 업무 지시 내용을 그대로 풀어서 다시 되물어서 확실히 답을 받아야 합니다. "네 부장님 알겠습니다. 그럼 2022년도 상반기에 발생한 고객 클레임 수를 조사해서 발표자료 10페이지에 있는 도표를 업데이트하라는 말씀이시죠?"와 같이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열심히 다해서 퇴근시간 맞춰서 보고 드렸는데 의도에 맞지 않아 다시 해야 하는 서로 짜증 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받은 업무가 퇴근 전까지 하기가 어려운 정도의 양이라면 언제까지 필요한 것인지 명확히 물어봅시다. 그리고 솔직하게 퇴근 전까지는 어느 수준까지는 가능하고 지시를 완수 가능한 시기 (내일 오전까지, 금요일 퇴근 전까지...)을 미리 말씀드리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만약 일상적인 업무보다 긴급한 업무가 더 많다면, 근무 시간을 조정해서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대신 개인적인 일들은 아침에 활용하는 거죠. 진짜 팀 전체가 급해서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면 함께 야근하고 정당하게 대체 휴일이나 야근 수당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블로그 참조 - 정시 퇴근은 표어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합니다. 그리고 긴급한 지시는 시간을 가리지 않습니다. 회사는 어찌 되었건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곳이니만큼 받은 일을 어떻게 시간 배분 관리하느냐는 스스로에게 달려 있습니다. 미리미리 준비해서 슬기롭게 대처해 봅시다. 제 선배처럼 생각보다 하루 8시간은 짧지 않습니다. 


MZ를 위한 TIPs

일상적인 업무는 오전에 미리 해 두자. 

긴급한 지시일수록 원하는 바와 언제까지 원하는지를 명확히 확인하고 완수 가능한 시기를 미리 제안하자.

유연 출근제와 대체 휴일을 활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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