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같이 답을 찾아가는 정치가 그립다.
지난 일주일은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12월 3일 화요일 일본 여행을 갔다가 인천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비상계엄 소식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리고 긴박했던 그날 밤, 새벽 3시까지 차가워진 집에서 뜬 눈으로 상황을 지켜본 후유증으로 감기를 심하게 앓았습니다. 다행히 의회에서 계엄 해제를 가결하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서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그날의 긴장감은 몸에 박혀 한 주를 힘들게 합니다.
뜬 눈으로 지새운 다음날 아침에 그날 기말고사를 보기로 한 학생들에게 따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늘 기말고사는 그래도 진행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던 일들을 합시다. 그래서 비상 상황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 줍시다." 그러나 이미 일이 벌어진 이상 우리의 일상은 이전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이후로 탄핵안이 발의되고, 그날의 상황들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경악합니다. 탄핵안을 부결시키면서 국회를 퇴장하는 여당의 모습에 분노하고, 어이없는 담화로 여전히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윤석열 씨의 모습에는 어이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계속 고민해 보게 됩니다.
윤석열 씨가 대중 앞에 드러난 건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에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의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다가 국정감사에서 수사 외압을 폭로하면서부텨였습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강직한 이미지를 쌓은 그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에서 수사팀장을 맡아 탄핵을 주도하게 됩니다. 그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는 개혁의 적임자로 판단해 검찰 총장으로 임명했지만 반발하면서 지금의 "보수 수호의 아이콘"이 됩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었고, 계엄을 실패하고, 본인이 진행했던 탄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한국의 정치사에 나타난 이후부터 우리나라 정치는 누군가가 무엇을 잘못한 것을 캐고 그걸 최선을 다해서 서로 비방하고 처벌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습니다. 박근혜-최순실이 그랬고, 조국이 그랬고, 문재인 대통령의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그랬고, 이재명이 그랬고 김건희가 그랬습니다. 칼을 쥐고 있는 검사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자신들을 압박하는 측의 뒤를 캤고,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결국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업을 삼았던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게 됩니다.
사람들은 아마도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던 그의 첫 일성을 기억하며, 그가 이 혼잡한 판을 잘 정리해 줄 거라고 기대했을 겁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기대는 틀렸고, 우리는 극노와 불통으로 가득 찬 2년 7개월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겨울밤에 느닷없이 나라가 40 여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초유의 '계엄' 사태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실 그가 충성하지 않는 사람에는 국민도 포함되어 있었고, 여전히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잘못한 사람이 나와서 그를 비방하고 처벌하는데 다들 신이 났습니다. 다들 "이제야 이야기하는데..." 라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이럴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 와중에도 부정 선거 의혹을 언급하면서 이번이 기회고 탄핵은 안된다며 바짓가랑이를 부여잡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고 같은 하늘에 같이 못 살 사람처럼 취급하는 소리가 연일 유튜브와 방송에서 시끄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하늘 같은 나라 안에서 살아야 하는 한 나라의 시민들입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일들 중에 서로 이익이 상충될 때 지켜야 할 최소한을 정해 놓은 것이 법입니다. 그리고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는 서로 잘못한 것 찾고 처벌하기 위해 그런 최소한만을 엄밀하게 보는 법의 잣대를 갑론을박하는 것이 정치 행위의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윤석열 씨가 대통령이 되고, 22대 총선에 전체 20%인 60명의 국회의원이 법조인 출신이라는 사실은 우리 정치가 얼마나 법에 경도되어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덕분에 정작 국민의 삶과 국가의 발전을 고민하고 더 나은 길을 찾아가는 영역이 소외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멈추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12-3 계엄 사태가 생긴 근본 원인은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같이 답을 찾아가는 정치의 실종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우리가 진짜 복원해야 하는 것은 삶을 풀어내는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탄핵이 마무리되지도 않았고, 진실이 규명되기 위해서 한동안 여러 방면에서 조사도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우리의 우선순위에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선과 악의 이분법을 거두기를 희망합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자칫 우리가 지금 당연히 누리던 것들이 사라질 뻔했던 엄중한 계엄이 실패했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서는 시민들과 어딘가 선을 지키며 멈칫하던 계엄군이 보여 준 용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용기는 개개인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양심으로부터 나옵니다. 계엄 상황을 다룬 소설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를 늘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수많은 비방과 서로에 대한 미움에도 불구하고 12월 3일 밤 여의도 차가운 길 위의 그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개인들의 양심들 덕분에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믿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야 따뜻한 봄이 옵니다. 서로의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들 사이에도 봄꽃은 꽃눈 속에서 꿈을 꾸며 기다립니다. 지금의 한국 정치도 추운 겨울. 따뜻한 양심들의 꿈을 담는 큰 정치가 피어나기를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