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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관세가 미국을 구하기 어려운 이유

제조업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by 이정원

도널드 트럼프가 취임한 지 열흘이 지나가고 있다. 취임 당일 자신의 공약들을 바로 이행하겠다고 하면서 전기차 세금 감면을 없애고 국경도 강화했다. 그렇게 해야 지지자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걸 트럼프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다른 나라 물건에 대한 관세에 대해서는 관망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에 대해 무역 수지 흑자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에게 대해 면밀하게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다른 정책들에 비해 관세에 대한 결정이 부담스러운 것은 관세라는 제도가 가진 양면성 때문이다. 국경 내에서 만드는 것보다 싸고 경쟁력 있는 상품이 들어오면 해당 상품을 만드는 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한국에 진출하는 BYD의 ATTO 3가 만약 관세도 없이 들어온다고 생각해 보자. 3,00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중형 전기차를 구매할 수 있다고 하면 전기차를 만드는 국내 기업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관세는 취약한 산업을 보호하는 효과가 확실히 있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쨌든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제품의 가격이 올라간다. 물가가 올라가면 실질 임금이 줄어들고, 소비력이 떨어지면 내수가 위축된다. 돈이 돌지 않으면 실업률이 증가하고 그러면 소비력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불황이었던 경제 대공황 직전에도 어마어마한 보호 관세가 적용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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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시행된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수입품에 20세기 이후 최고 수준인 평균 59%, 최고 400%의 관세를 부과한 법안이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경기가 흔들리자 보호무역을 통해 당시 미국의 주력 산업이었던 농업과 경공업 등 노동집약적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수출 타격을 우려한 중공업 및 자동차 업체들과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왔지만 추진이 강행되었다.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파국이었다. 전 수입품에 대해 평균 20%의 관세가 부과되면서 유럽도 보복관세를 단행했다. 갑자기 올라간 가격에 시장은 얼어붙으면서 무역량이 급감했다. 돈이 돌지 않자 실업률이 증가하며 경기가 크게 침체됐다. 이 실패를 계기로 미국은 자유무역으로 선회했다.


트럼프는 여러 차례 관세의 목적이 미국의 제조업을 다시 살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스스로 마스크와 주삿바늘조차 만들 수 없는 위기를 겪고 나서 미국은 경제가 유지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들을 미국 내에서도 생산이 가능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배터리, 반도체 같은 주요 부품들에 대해서는 특히 경쟁자인 중국을 견제하려는 정치적인 의도도 깔려 있다.


앞서 이야기한 전기차처럼 산업을 보호하려면 관세가 가장 손쉽다. 싼 물건에 손이 가기 마련인 자본주의 시장에서 관세는 경쟁력이 약한 제품의 산업군에게 보호막 역할을 해준다.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러스트벨트의 블루칼라 유권자들에게도 따뜻한 이불처럼 느껴질 수 있다. 적어도 그들의 공장이 더 유지되는 데에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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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미국 경제 전체에서 관세를 통해 보호를 받는 제조업의 비중이 이미 너무 낮다는 데 있다. 2023년까지만 해도 전체 GDP의 11% 수준을 유지하던 미국의 제조업 비중은 2024년에 9%대로 줄어들었다. 임금이 높고 다양한 서비스가 활성화되는 선진국으로 갈수록 당연히 제조업의 비중은 줄어들고 서비스업의 비중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다시 관세로 돌아가보자. 10%도 채 되지 않는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관세를 높이면 물가는 상승하고 소비는 위축된다.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으면 60%가 넘는 서비스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션도 문제지만 그에 따른 실업률의 증가가 걱정이다 보니 연준도 그동안 조금씩 진행해 오던 금리 인하를 트럼프가 취임하자 일단은 멈추었다.


트럼프가 함부로 관세를 적용할 수 없는 배경에는 이런 어려운 현실이 깔려 있다. 1990년 이후 30년간 WTO 체제에서 서로의 강점을 나누며 다 같이 성장하던 시대를 유지하던 틀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가장 큰 경제 규모로 세계 시장을 이끌어 왔던 미국이 문을 닫으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확실한 건 미국이 대규모 적자를 보더라도 돈을 찍어 전 세계에 풀며 성장하던 과거는 이제 없다는 것이다. 마치 K-POP처럼 미국조차도 가져다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혁신이 답이다. 특히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동차 산업동향 플랫폼 아우토바인에 2달 전에 기고한 글을 조금 늦게 공유합니다. 그 사이에 미국 주가는 급락하고, 자동차 관세는 25%로 오르더니 오늘은 전 품목에 대한 상호 관세 25%를 발표했습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다룬 글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https://autowe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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