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산업을 지탱하는 자원을 누가 어떻게 확보하는지가 중요해 졌다.
내연기관차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지구상에 매장된 석유가 부족해지면 원유가 무기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30년 전인 1990년대에 20 ~ 30년 뒤면 석유가 모두 고갈될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렇게 믿지 않는다. 원유를 채굴하는 기술의 발달, 특히 바위에 스며들어 있는 원유를 고압으로 추출해 내는 쉐일 가스 채취 기술의 발달로 석유 고갈의 위기는 사라졌다. 이렇듯 모든 광물은 채취하는 비용과 기술의 발달 그리고 가격 간의 상관 관계로 움직인다.
석유 고갈의 위기는 넘어섰지만, 자동차 산업은 전동화와 더불어 새로운 자원 압박을 받고 있다. 바로 리튬과 희토류다.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와 움직이는 동력을 만드는 모터에 들어가는 영구자석의 수요는 전기차 비중이 늘어나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원자재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 생산량 자체를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두 핵심자원 모두 중국의 지배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기율표상 가장 가벼운 금속인 리튬은 ‘하얀 석유’로 불린다. NCM이나 LFP 모두에 전해질로 쓰이며 배터리를 만드는 핵심 광물이다. 매장량 자체는 칠레에 가장 많아 전세계 3분의 1인 930만톤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그 뒤를 이어 호주, 아르헨티나가 있고 중국은 4위권의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 매장량도 놓지만 중국은 수준 높은 리튬 제련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채굴된 리튬은 중국으로 운반돼 고순도 리튬 화합물로 제련된다. 전 세계 리튬 화합물 생산량 중 중국에서 생산된 비중이 65%다. NCM 배러리에 쓰이는 수산화리튬 제련은 전체 생산량의 75%가 중국에서 생산됐다. 우리나라도 NCM 배터리를 만드느라 중국산 리튬을 80% 가까이 수입해 사용한다. 그만큼 중국에 의존도가 높지만 그나마 리튬은 다른 지역에서도 채굴과 생산이 가능해 대안이라도 있다.
그러나, 현대 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희토류는 사정이 다르다. 희귀한 흙이라는 뜻의 희토류는 다양한 첨단 사업에 사용되는 17가지 원소를 지칭한다. 대표적인 원소인 네오디뮴은 이름은 생소하지만 스피커, 하드 드라이브, 전기차 모터 등을 만드는데 필요한 강력한 영구 자석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이트륨, 유로퓸의 경우 색을 표시하는 특성 때문에 TV나 컴퓨터 화면 제작에 이용되고 배터리에 들어가는 세슘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전자기기들에 희토류는 필수로 들어간다. 이뿐만 아니라 레이저 수술, MRI 스캔과 같은 의료 기기와 핵심 군사 기술에도 희토류는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이런 희토류 시장을 대부분 중국이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희토류는 사실 이름과는 달리 희귀하지는 않다. 대신 희토류의 추출과 가공 작업 모두 비용도 비싸고 환경 오염을 유발한다. 아울러 모든 희토류에는 방사성 원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국 내 희토류 채굴과 제련을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빈 틈을 중국은 오래 전부터 준비했다.
중국의 경제 개방을 시작했던 덩샤오핑은 1992년 내몽골 자치구를 방문했을 당시 "중동에는 석유가 있고,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며 희토류 개발을 미래 전략으로 선언했다. 그 때부터 중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느슨한 환경 기준과 인건비를 바탕으로 희토류 채굴 및 가공 능력 개발에 집중했다. 서구의 다른 나라들이 이런 저런 까다로운 환경 조건을 다 지키다 보니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중국과 경쟁이 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광물 채굴, 정련에서부터 자석과 같은 완제품 제조에 이르기까지 전체 희토류 가치 사슬 전반에 걸쳐 사실상 독점적인 지위를 구축하게 되었다.
중국이 현재 희토류 공급망을 장악했다는 것은 어떤 기업이 희토류를 받을 수 있을지를 중국 정부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권한을 중국 정부는 국제 무대에서 강력한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기세 좋게 트럼프가 대 중국 관세를 매기겠다고 선언했지만, 곧 유예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희토류 덕분이다. 미 행정부의 관세에 맞서 5월 초 중국 정부는 7가지 희토류 광물의 수출을 제한한다고 밝혔고 미국의 산업들은 휘청거렸다. 지난 주말 동안에는 제조업을 살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이 무색하게 어떻게든 생산을 이어가게 하기 위해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것을 검토한다는 기사도 나왔다. 관세는 극복해도 자원 없이 생산은 불가능하다.
다행히도 중국은 희토류 규제를 풀면서 중국발 공급 부족 사태는 일단은 해결 국면으로 접어 들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관세보다 더 강력한 이 무기는 언제든지 다시 꺼내들 수 있다. 중국 내수에 영향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공급망 다변화를 시도하면서 자국내에서 생산 가공 능력을 확보하려고 나설 수 밖에 없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와 기술 발전 등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이후에도 중국에 의존했을 때보다 어쨌든 자동차를 생산하는 비용은 증가할 것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최대 희토류 생산국이었던 미국도 중국의 규모와 비용 공세에 시장에서 사라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건으로 광물 거래를 하고자 애쓰는 이유도 이런 배경이 숨어 있다.경으로 여겨진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자 하는 것이다. 말릴 사람이 없어 보였던 트럼프의 광기도 희토류 앞에서 무너지는 모양새다.
이런 조치들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우리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희토류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희토류 생산 및 제련에 대한 사업에 적극적으로 도전해 볼 필요가 있다. 관세와 자원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미,중 사이에서 실리를 찾는 외교도 필요하다. 결국은 물건을 팔아야 먹고 사는 우리에게는 이렇듯 자원이 무형의 관세보다 더 절실하다. 새로운 정부가 바라봐야 할 과제가 하나 더 늘었다.
자동차 산업 전용 플랫폼 아우토바인에 올린 글을 조금 늦게 공유합니다. 국제 정세가 자국 우선주의로 흘러가면서 자원 전쟁이 더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자동차 뿐 아니라 미래 산업의 핵심 자원에 대한 준비가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