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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렇게 살면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할 거예요

47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by 이정원

사랑하는 상인 씨. 생일 축하합니다.


벌써 제가 퇴사를 하고 온전히 당신과 함께 시간을 보낸 지도 일 년이 넘었네요. 퇴사를 하고 가장 좋은 점이 무언지 물어보면 첫 번째 대답은 "가족이 필요할 때 곁에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답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답한 다음 나 혼자 다음 좋은 점을 생각해 보면. "누군가와 경쟁하지 않아서 좋다"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사실 회사 다닐 때는 그랬거든요. 무언가가 되어야겠다는 그런 마음은 애초에 없이 그저 맡겨진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지냈지만 조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등수를 매기고, 누가 무슨 일을 맡고 어느 직책을 맡고 좋은 고과를 받아 먼저 승진하는지가 계속 회자가 되었죠. 내가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그들이 의식했고 그런 그들에 신경 쓰느라 저는 늘 불편했어요.


조직을 나와 있는 지금은 그런 부담이 없어졌습니다. 매일 글을 쓰고 강의하는 삶은 단순합니다. 서평이든 산업동향 기고든 누구보다 잘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그 책에, 기술 자체에, 산업이 흘러가는 방향에 온전히 집중해서 찾아보고 이해하고 깨닫고 나누고 싶은 것들을 꺼내어 글에 담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그저 나를 필요로 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에요.

대신 좀 외롭습니다. 혼자서 해 내야 하는 일들 사이에 지치고 힘든 점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죠. 그 필요한 빈 공간을 당신은 특유의 쾌활함과 따뜻함으로 가득 채워 주고 있어요. 당신과 산책하며 주고받는 (주로 제가 듣지요) 대화는 늘 즐겁고 그립습니다. 그렇게 충전하고 또 하루를 살아갑니다.


이제 고1이 되어 경쟁에 힘들어하는 큰아이를 보면 꼭 그 길만 있는 건 아니라고 가르쳐주고 싶어요. 그러나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알게 된 생각들이 한창때인 아이에게는 뭔 소린가 싶겠지요. 그럴 때는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을 합니다. 받아들이고 괜찮다고 늘 다독여 주셨던 어머니처럼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으면 아이들도 그걸 보고 그렇게 살아도 되는 구나라고 다시 생각하게 되겠지요.

어머니는 떠나셨지만 어머니께서 보여주셨던 좋은 점들은 당신을 통해 우리 가족 속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어딜 갔다 오든 쪼르르 안방으로 가서 그날 있었던 일을 수다 떨며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없다면 얼마나 적막할까요? 노잼 남편 몫까지 채우느라 하는 고생만큼 제가 더 잘할게요. 우리 그렇게 남은 인생도 경쟁하지 말고 함께 하면서 잘 지내봅시다. 생일 축하해요.


2025년 9월 6일

늘 고마운 남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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