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팅과 미팅 사이에 시간이 좀 남았다.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기 애매해서 두 번째 미팅 장소 근처 카페에 갔다. 2층 까지 있는 작은 카페였다. 여기 갈 때마다 2층에 자리를 잡았었다. 그런데 이 날에는 2층 테이블 옆에 처음 보는 안내문 하나가 붙어 있었다. 4인석이기 때문에 두 명 이상일 때만 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애매한 오후 시간이라 1층과 2층을 통틀어서 손님이 나 혼자밖에 없었다. 나는 나중에 누가 오면 옮기지 뭐, 하며 그 자리를 차지했다.
두어 시간 정도 정신없이 일을 했다. 카페 사장님이 2층에 올라와서 이것저것 정리하시더니 내 쪽으로 와서 한 마디 하셨다.
'고객님, 죄송한데 1인석으로 옮겨주시겠어요?'
'아 저는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넓은 자리 써도 되는 줄 알았어요. 나중에 손님 오시면 옮길게요.'
'그런데 다른 손님들이 왔을 때 큰 테이블에 누가 앉아 있으면 자리 옮겨달라고 하기 부담스러워하시더라구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2층에는 손님이 나밖에 없었지만, 사장님 말씀대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남은 자리 중에 노트북을 쓰기 좋은 자리는 1층에만 있어서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1층에는 카운터와 주방이 있어서 2층에서 일할 때보다 불편했다. 자리를 옮기고 나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사장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어서 잠자코 있었다.
다만 이 일을 계기로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는 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작은 카페 사장님이라면 손님 한 명 한 명이 아쉬울 테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사는 사람이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다가는 파는 일을 오랫동안 이어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안 그래도 요즘 카공족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사장님으로서는 이런 손님들을 막고 카페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규칙을 만든 것 같다.
우리 회사에도 이런 규칙이 있다. 계약을 할 때 마진율을 어느 정도 이상 지켜야 한다든지, 고객이 무리한 부탁을 했을 때 계약 규모가 어느 정도 이상 될 때에만 받아준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고객들이 나에게 우리 제품을 잠깐 무료로 쓸 수 있도록 도와달라거나 기술 지원을 무료로 해달라는 부탁을 할 때, 나도 규칙에 따라 칼 같이 거절할 때가 있다. 어쩌면 내가 카페 사장님께 느꼈던 불편함을 우리 고객들이 나에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경우와 카페 사장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는 사람에게 규칙을 지켜달라고 부탁했을 때, 사는 사람이 그 부탁을 납득하느냐 납득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고객 경험이 전혀 다르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파는 사람은 사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면서도 어떤 상황이나 조건일 때 도음을 줄 수 있는지 최대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사는 사람 입장에서도 파는 사람의 입장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대화는 부탁하고 거절하는 장면이 아니라 서로 협상하는 장면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니 규칙을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적용하려고 하기보다는 때에 따라 조금 유연해질 필요도 있는 것 같다. 규칙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더 높은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파는 사람이 만든 규칙이 파는 일을 오히려 방해한다면 쓸모가 없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잘 팔기'라는 목표보다 규칙을 더 높은 곳에 둔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솔직히 몇몇 장면들이 떠오르기는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조금 더 유연해져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