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인생을 보내는 곳에서
그날도 어김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밥때를 놓쳤다. 배가 고파 근처 시장통에 있는 칼국수 집으로 들어갔다. 끼니나 대충 때울 생각이었기 때문에 식당에 대해 별 기대를 안 했다. 다만 그날따라 쌀쌀해서 따뜻한 국물이 그리울 따름이었다. 기대가 없었음에도 식당의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밖에서 봤을 때보다 가게가 너무 작고 허름했다. 사장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메뉴판에도 없는 요리를 하나 놓고 손님과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단골손님에게만 특별히 더 잘해주는 것 같아서 그것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꾹 참고 칼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 칼국수 치고 값이 싸지도 않은 데다가 요리 나오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갈수록 기분이 나빠졌다.
이윽고 음식이 나왔다. 칼국수 한 그릇에 양파, 당근, 단호박, 감자 등등 여러 채소들이 듬뿍 들어 있었다. 싱싱한 재료가 아낌없이 들어 있다 보니 국물이 시원했다. 반찬은 열무 물김치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알맞게 익어서 시원하게 먹기 좋았다. 아마도 사장님의 필살기가 아니었을까. 게다가 사장님은 내가 음식 먹는 내내 필요한 게 없는지 살펴보시다가 먼저 알아서 챙겨주셨다. 단골손님에게만 잘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식당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작은 것 하나라도 꼼꼼히 챙기려는 사장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음식을 다 먹고 나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은 얼마 전 아웃렛에서 겪은 불쾌한 일과 완전히 반대여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스니커즈 하나 사고 싶어서 신발 매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매장 직원이 나를 밀치고 지나갔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나에게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주말이라 손님이 많다 보니 정신없어서 그랬나 보다, 하고 이해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그 가게 앞을 다시 지나가면서 보니, 그 사람이 이번에는 다른 직원과 손님을 험담하고 있었다. 그 손님이 싸가지가 없다나 뭐라나. 파는 사람이 다른 손님들 듣는 곳에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게 놀라움을 넘어 신기할 정도였다.
영업 사원이 되고 나서, 나는 다른 파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먼저 깨닫게 된 것은 사람들이 정말 다양한 것들을 팔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나는 차를 한 대 샀다. 그 차를 잘 굴리기 위해서는 보험, 엔진 오일이나 타이어 같은 온갖 소모품, 하다 못해 방향제까지 추가로 사야 했다. 뿐만 아니라 정비나 세차처럼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것들도 많았다. 그런 것들을 파는 사람들은 우리 경제의 모세혈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만큼 힘든 일도 많이 겪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사람들이 나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지갑을 열도록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지 보면 공짜로 많은 경험치를 쌓는 느낌이다.
칼국수 집 사장님처럼 고객에게 큰 만족감을 주는 사람을 보고 나면, 그 사람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본다. 반대로 신발 가게 직원처럼 나쁜 기억을 주는 사람을 보고 나면, 혹시 내가 고객에게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 영업 사원으로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의 리스트가 만들어질 것이다. 사실 영업 사원의 행동 양식 리스트에 올라갈 만한 것들은 사실 사소한 것들일지도 모른다. 고객과 식당에 가면 먼저 물을 따르거나 수저를 놓는다든지, 아니면 택시를 탈 때는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먼저 차에 올라 안쪽 자리에 앉는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것을 잘 해내는 사람이 결국 큰 일도 잘하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날 칼국수를 먹으면서, 칼국수 집 사장님이 단골손님과 이야기하는 걸 엿들었다. 별거 아닌 말이지만 계속 곱씹게 된다. 내 눈에는 작고 허름해 보이는 가게이지만, 사장님은 그 가게가 자신의 '인생'을 보내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니 가게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즐겁게 일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이왕이면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고, 손님들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고, 손님들과 즐겁고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나도 내 시간을 그처럼 의미 있게 채우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그 사장님처럼 사소한 것들까지 최선을 다해서 해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해야 하지만 귀찮아서 뒤로 미뤄놨던 일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그것들부터 차근차근 처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