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안 하는 사람과 일단 한 번 해 보는 사람
한 고객사로부터 오랜만에 미팅 요청을 받았다. 고객은 그동안 우리 제품을 쓰면서 겪었던 오류 내용을 우리에게 공유하고, 앞으로 어떻게 쓰면 좋을지 컨설팅을 받아보고 싶다고 했다. 이곳은 우리 제품을 쓴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제품에 대한 연락을 일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할 정도로 교류가 없었다. 그야말로 모처럼 미팅을 하게 된 것이다. 고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단순한 기술 지원보다는 넓은 관점에서의 컨설팅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제조사의 엔지니어에게 미팅에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는 '그 미팅에 제가 왜 가야 하죠?'라고 물었다. 영업 기회가 없는 미팅에는 굳이 참석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제조사 내부적으로 엔지니어 업무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이 얼마 전부터 바뀌기는 했다. 그 기준이란 엔지니어의 업무 성과를 영업 실적과 연결해서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번처럼 영업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회의에는 엔지니어들이 잘 참석하지 않으려고 한다. 제조사의 영업 사원이 그를 설득했지만 그는 납득하지 못했다. 결국 내가 다시 그에게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했고, 결국 그는 미팅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별거 아닌 일로 이렇게 힘겹게 의사소통하다 보니 '일을 어떤 마음으로 대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오랜만에 생각났다. 나는 적극적인(프로액티브, proactive)한 사람과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프로액티브'하다는 것은 단순히 활발하기만(active) 한 것을 넘어서 주도적으로(pro) 움직이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런 사람들은 '일단 한 번 해 보는' 원칙을 가지고 일을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할 일을 찾아내고, 그 일을 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맞춰 진도를 나간다.
하지만 세상에는 프로액티브하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다. 보통의 많은 사람들은 뭔가를 새로 시작하려면 귀찮고 힘들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앞에서 말한 엔지니어도 적어도 업무에 대해서 '웬만하면 하지 않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물론 그도 삶의 어떤 부분에서는 '일단 한 번 해 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과 일을 하려면 에너지를 쓸데없이 소모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고객에게 쏟아야 할 에너지를 그 사람이 움직이도록 설득하는 데에 쓰는 것 같아서 내 에너지가 아깝다는 생각까지 든다.
'웬만하면 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면 더 신중하게 의사결정할 수 있어서 실패 확률을 줄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어떤 사람들에게는 '웬만하면 하지 않는' 태도가 자신을 위하고 지키는 좋은 방법이 될 것도 같다. 다만 나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 뒹굴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게 배우고 성장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흙탕물이든 똥물이든 묻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일이 다 끝나고 씻어내면 된다. 대신 그동안 구르면서 얻은 경험치는 내 안에 보석처럼 단단히 자리 잡아 나를 지켜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한 번 해 보는' 원칙이 나를 위하고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라고 해서 세상 모든 일에 내서서 '일단 한 번 해 보자'고 덤비지는 않는다. 어떨 때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또 어떨 때는 내 시간이 아까울 것 같아서 안 하려고 할 때도 있다. 당장 이번 주에도 미팅 하나를 거절했다. 그럴 때는 '이걸 안 하는 대신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그것은 이것보다 더 가치 있는가'를 항상 생각하려고 한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그 선택에 분명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 근거가 없이 그냥 하기 싫은 것이라면 '일단 한 번 해보자'라고 나를 다독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