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일자리 문제(4)
월마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리테일 기업이라고 할 만하다. 전 세계에 걸쳐 1만 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210만 명 정도의 직원들이 그 많은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삼성전자 전체 임직원 수가 26만 명 정도라고 하니, 월마트의 고용 규모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월마트는 2024년에 매출 6426억 달러, 영업이익 271억달러의 실적을 만들어냈다. 1달러 환율을 1,400원으로 계산하면 매출은 약 900조원, 영업이익은 약 38조원에 이른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쿠팡이 2025년 예상 매출 48조원, 예상 영업이익이 8400억원 정도라고 하니, 월마트의 실적 또한 어마어마해 보인다.
월마트는 지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여전히 많은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등장했을 때, 월마트는 이 기술을 발빠르게 도입해서 공급망을 성공적으로 혁신하기도 했다. 요즘은 AI 시대에 발맞춰 월마트도 AI 기반의 유통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월마트가 중심 가치로 삼고 있는 것은 "인간성을 바탕으로 선도하되, 강력한 기술로 직원들을 지원하는 것(lead with humanity, but support our associates with powerful technology"이다.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AI를 활용해서 업무를 더 잘 하게 되고, 나아가서 기업 전체의 성과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AI가 사람을 대신할 것이라는 생각의 바탕에는 AGI(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AGI는 사람과 동등한 수준의 지능을 인공지능으로 구현하여 자율적 문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월마트는 AHI(Adaptive Artificial Intelligence)를 강조한다. AHI는 AI 활용에 있어 사람 중심의 적응력과 협력에 초점을 두고 직원들이 AI와 함께 성장하고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월마트가 강조하는 AHI는 단순히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AI를 활용하면서 지속적으로 학습 및 성장하며 일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월마트는 AI를 통한 직원 역량 강화가 고객 경험 향상과 비즈니스 경쟁력 확보에 핵심 열쇠라고 보고 이에 집중하고 있다.
월마트는 OpenAI와 긴밀히 협력하여 ChatGPT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직원들을 위한 맞춤형 인증 과정을 개발하고 있다. 이 인증 과정은 월마트가 2026년까지 추진할 10억 달러 규모의 기술 투자 계획의 일환으로, "사람 중심, 기술 중심"이라는 월마트의 비전을 뒷받침한다. 이 과정은 업무 관련 애플리케이션과 개인의 디지털 리터러시 모두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미 350만 명 이상의 참가자를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민간 교육 플랫폼인 월마트 아카데미를 통해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월마트에서는 다양한 AI Agent를 도입하고, 이것들을 쉽게 활용할 수 있게 통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월마트 직원들이 AI 교육을 받고 나면, AI를 관리감독하면서 보다 폭넓게 업무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월마트가 이렇게 직원 교육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오랫동안 직원들의 성장을 통해 회사 전체의 성과가 높아지는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다. 월마트는 입사 후 교육을 통해 직원들이 전문적인 직무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한다. 실제로 많은 관리자와 임원들이 말단 직원에서부터 커리어를 쌓았다. 대표적인 예가 월마트 CEO인 더그 맥밀런(Doug McMillon)이다. 그는 1984년 물류 창고의 시간제 직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대학 졸업과 MBA 학위를 취득하고, 점차 기업 내 다양한 중간 관리자 직위를 거쳐 2014년 CEO에 올랐다. 이처럼 직원과 회사가 함께 성장한다고 믿는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보니 월마트는 지금처럼 산업의 큰 변곡점에서도 직원 교육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가깝게 지내던 고객이 조직을 옮겨서 더 이상 나와 협업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얼마 전에 그와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어떤일을 하는지 물으니 직원들이 하는 업무들 중에 AI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위해 여러 부서의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AI로 바꿀 수 있는 업무를 찾으면 실제로 그 일에 AI를 도입하는 일까지 하게 될 것이라 했다. 그 걸과로 직원 수를 줄이는 대신, 원래 사람이 하던 일을 AI가 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 회사에서는 대규모로 희망 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직원을 비용으로 보는 한편, AI가 사람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 AGI 기반의 접근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막상 인터뷰를 해보니, 직원 개개인이 굉장히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다고 한다. 아마 회사가 오래되다 보니, 여러 조직이 비슷한 일을 하는데도 그 일의 내용을 서로 공유하지 않거나, 유능한 직원에게 여러 업무가 몰리는 등의 문제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하는 일을 명확하게 나눠서 AI로 손쉽게 자동화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월마트의 사례가 떠올랐다. 차라리 사람이 하고 있는 업무의 일부는 AI가 자동화해서 시간을 아끼도록 하고, 그렇게 아낀 시간에 다른 업무를 기획하거나 AI를 관리감독하도록 하는 게 더 나은 방법으로 느껴진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AI가 사람을 완전히 대신한다는 AGI 보다는 사람과 AI가 협력하는 AHI가 보다 나은 접근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