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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희 Feb 22. 2024

"나와의 화해"를 읽다 (이송희)

1st 사람책

저는 ‘평범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누구를 만나도 자신만의 사연과 삶의 경험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특별한 책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그 책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읽은 첫 번째 사람책을 소개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아무런 조건 없이 목숨을 다할 만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강력했어요. 그거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나를 갉아먹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해소되고 잘못된 시선과 편견도 되돌아보고 고칠 수 있게 되었어요. 외면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아주 건강해진 것 같아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한결같이 은은하지만 선명하게 빛나는 사람이 있다. 송희가 그랬다. 그래서 3년 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그녀는 어색한 듯 웃는다. 그녀는 자신을 표면적으로는 AI 자연어처리 분야를 공부하며 취업을 준비 중이라고 소개했다. 최근에는 정돈된 삶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정돈된 삶은 어떤 삶일지 궁금해졌다. 


> 정돈된 삶이란 내면과 외면의 평화가 일치하는 삶을 의미해요. 사실 지난 1년 정도는 외면은 평화롭지만 내면은 평화롭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힘들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완전하지 않은 것 같다는 허무감과 이 일이 아닌 것 같다는 걱정이 있었어요. 어떻게 살면 지금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지만 육체적, 감정적 게으름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어요. 그런데 정말 느리지만 꾸준히 조금씩 나아간 것 같아요. 이제는 내면의 평화를 많이 찾고 있어서 정돈된 삶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녀가 꾸준하게 자신과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살아왔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녀의 일상에 호기심이 들었고 하루 중 어떤 시간이 가장 행복한지 물었다. 


> 아침에 딱 눈을 떠서 정신을 차릴 때까지의 나른한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 일상을 시작해야 해서 곧바로 그 행복이 사라지기는 하지만 그 시간이 엄청 평화롭다고 느껴요. 나른함 속에 있는 30분 정도의 시간이 좋아요. 


기상 직후를 하루 중 가장 괴로운 시간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시간을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대답이 신선했다. 요즘 송희를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취업이다. 그 이유는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는 지금 스스로 돈을 벌고 싶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ChatGPT 이후에 언어 모델에 대한 관심이 올라갔고 네이버의 하이퍼 클로버 서비스를 보면서 하이퍼 클로버 같은 언어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취업이 요즘 그녀의 최대 관심사인 것 같다. 이전에 그녀가 설렘을 느꼈던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 관계에서 설렘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성적인 설렘이 아니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에너지와 설렘이 항상 있었어요. 그래서 좋은 관계를 계속해서 맺고 싶다는 동기가 있어요. 콕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고 워킹 홀리데이에서 보냈던 모든 시간, 한국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 기타를 배우는 것 등 되게 많은 것이 떠올라요. 


그녀도 나처럼 좋은 관계에서 주고 받는 에너지를 중요하게 느끼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녀가 생각하는 좋은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 


>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관계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관계예요. 그런데 좋은 관계라는 건 개인마다 또 상황마다 다르겠죠. 저는 같이 있을 때 편안한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받기도 하고 밝은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기도 해요. 저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관계를 좋은 관계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그녀의 삶에 대해 알고 싶었다. 송희는 인생에서 두 번의 변곡점이 있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신앙을 갖게 된 것이고 두 번째는 호주를 다녀온 것이라고 했다. 신앙을 갖게 되고 송희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어요. 내가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제대로 살 수 있었을까 싶었을 정도로 큰 영향을 받았어요. 지금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생에 아주 커다란 부분이에요. 내면적으로 외면적으로도 아주 건강해졌어요.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물었다. 


>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저는 굉장히 망가져 있는 상태였어요. 우선 심리적으로 굉장히 건강하지 않아서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다는 감정들과 그런 것에서 오는 우울감, 공허함이 굉장히 컸고 사람과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지 않다는 허무감이 들었어요. 우울증도 심했고 오해하고 있는 지점들도 많았어요. 하나님을 만나고 누군가가 나를 아무런 조건 없이 목숨을 다 할 만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강력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거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부정적으로 나를 갉아먹고 있었던 감정들이 많이 해소되고 잘못된 시선과 편견들도 많이 깨닫고 되돌아보고 고칠 수 있게 되었어요. 모든 크리스천이라면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바라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완전하신 분이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까 훨씬 더 건강하고 이상향을 향해 가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나의 삶을 살아가는 방향이 됐고 결정하는 순간들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이렇게나 밝고 건강한 에너지를 내는 송희에게 아픈 과거가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종교가 없어서 어떤 느낌일지 잘 상상이 가지는 않지만 하나님과의 만남이 그녀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어준 것 같았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그녀가 오해하고 있었던 지점이 어떤 부분일지 궁금했다. 


> 저는 되게 오랫동안 사람들이 다 저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를 향하지 않은 눈빛, 말들에 다 나를 싫어한다고 오해하는 지점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런 걸 건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시선도 가지게 됐고 설령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나를 뒤흔들만큼의 영향력을 갖지는 못해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밝히는 송희에게 단단한 심지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변화하고 성장해온 그녀가 멋지게 느껴진다. 그녀의 두번째 변곡점에 대해서도 물었다. 


>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게 된 지점인데 두 번째 변곡점이 온 시기는 인생에서 번 아웃이 왔을 때,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지쳤을 때였어요. 하나님을 만나고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해왔지만 부모님께서 제가 교회를 다니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셔서 집 안에서의 평화가 없었고 생활비를 벌어야 해서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어요. 또 교회에서 봉사도 다니다 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서 나를 사용하다 보니 번 아웃이 와서 호주를 가야겠다고 결정했어요. 호주를 가기로 결정을 하고 몇 달 만에 바로 떠났어요. 


그렇다면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와서 그녀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 호주에서 나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이 아주 어두컴컴했다면 이후에는 밝은 세상으로 나왔지만 나는 밝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내면까지는 밝지 않았는데 밝은 세상에 살다 보니 스스로가 밝은 줄 알았는데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많이 깨달았어요. 또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재정립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고 그 안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세상을 보는 눈이 훨씬 넓어진 것 같아요. 각각의 변곡점마다 하나의 갇혀 있던 세상에서 벗어난 것 같아요. 


변곡점마다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오는 송희를 응원하게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만나게 될 세 번째 변곡점은 어떤 모습일까? 


> 세 번째 변곡점은 신앙의 성숙도가 깊어졌으면 좋겠어요. 어린아이에서 벗어나서 부모님의 짐이나 감정을 나누어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싶어요. 물론 받은 만큼 사랑을 돌려 드릴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귀찮거나 지금 조금 힘들어서 같은 어린아이 같은 이유로 하나님의 일들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삶에서 변화해온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꿈이 무엇일지 알고 싶어졌다. 


> 꿈 있죠. 한적하고 공기 좋은 자연에서 살고 싶어요. 호수와 벤치가 있는 오두막에서 산책하고 동물들을 키우면서 사는 게 꿈이에요. 호주를 가서 깨달았는데 환경적인 여건 때문에 한국에서는 쉽지 않아요. 제 나이대에 상관없이 그런 곳에서 거주할 기회가 생긴다면 저는 선택할 것 같아요. 야채나 채소도 스스로 키워서 먹는 자급자족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감정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모든 면에서 베풀면서 살고 싶어요. 기본적으로는 여유롭고 고즈넉한 삶을 살면서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위해 베푸는 삶을 살고 싶어요. 여러 현실적인 문제가 있지만 제 꿈이에요. 


그녀다운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에서 베푸는 삶과 송희는 많이 닮아있다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생각하는 나다움은 어떤 모습일까? 


> 아침의 할 일을 하기 직전의 그 나른함. 나는 이런 사람이다, 하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아니고 제가 생각하는 나다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하루를 지나면서 많은 일이 생기는데 그런 일들이 쌓이기 전의 평화로운 시간. 책임감에서 자유롭고 약간은 게으르고 혼자 새벽 시간대에 있는 그 느낌이 나다움이 아닌가 싶어요. 


아침에 일어나기 직전의 나른함과 한적하고 공기 좋은 자연이 닮아 있는 것 같다. 송희는 새로운 경험이어서 조금은 어색하고 답변도 잘했는지 모르겠다며 머쓱해했다. 다른 사람들의 후속 인터뷰들도 보고 싶다며 그녀답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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