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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희 Feb 22. 2024

"집을 이고 걷는 사람"을 읽다 (호)

2nd 사람책

저는 살면서 ‘평범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누구를 만나도 자신만의 사연과 삶의 경험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특별한 책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그 책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읽은 두 번째 사람책을 소개합니다.



내가 마치 달팽이처럼 짐을 이고 다닌다는 점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캠핑을 하는 동안 집을 짓고 밥을 먹는 등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어요.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어서 좋아요.        




여기, 스스로를 달팽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어떤 이유로 자신을 달팽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호의 소개를 들어보자. 


> 요새는 이름보다는 별칭으로 많이 불리는 것 같아요. “내 동생~ 곱슬머리~ 별명은 서너개!” 이 노래 아시죠? 주로 밖에서는 호, 밴드에서는 후, 일터에서는 호랑이로 불려요. 호라는 이름이 더 가깝게 느껴져요. 저는 아이들과 노는 일을 하는 호라고 합니다.     

   


아이들과 노는 일이라니,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걸까? 


> 돌봄과 교육 그 사이 어딘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이들과 놀고 생활하는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공동 육아 방과후 학교 교사에요. 방과후에 아이들이 오면 공동체를 배우고 놀이와 나들이를 하며 세상을 만나도록 옆에서 같이 뛰노는 일을 합니다.        



어떻게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되었냐는 물음에 호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고 답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들 중에 중요한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육 활동가가 꿈이었고, 지금의 일을 찾게 되었다고. 그런 그의 취미는 캠핑이다. 


> 미취학 아동 때부터 초등학생 때까지 가족끼리 계곡으로 종종 놀러갔어요. 그 기억이 너무 좋아서 마음 맞는 사람이랑 캠핑을 같이 가요. 내가 마치 달팽이처럼 짐을 이고 다닌다는 점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캠핑을 하는 동안 집을 짓고 밥을 먹는 등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어요.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어서 좋아요.  


그는 요즘 백패킹의 매력에 빠져 있다. 


> 캠핑은 차에 짐을 다 싣다보니 과하게 짐을 쌓기도 하고 그 짐들이 감당이 안되기도 한단 말이죠. 내가 등에 질 수 있는 만큼만 짐을 가지고 걷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작년에는 우도 비앙도에서 백패킹을 했답니다. 우도가 제주의 동쪽 끝이어서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고 바람이 정말 많이 불어요. 동행과 함께 땀 흘리고 걷고 막걸리를 먹었던 저녁이 참 즐거웠어요.  


짐을 이고 걷는다는 게 편한 일은 아닐텐데. 무엇이 호를 걷게 만드는 걸까? 


> 더딤이 좋아졌어요. 차 타고 지나갈 때 보는 풍경이랑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때 보는 풍경, 걸을 때 보는 풍경이 많이 달라요. 햇살이 됐든 풀이 됐든 사람이 됐든 주변의 모든 것과 더 온전히 만날 수 있고 감정을 쏟아내기도 좋아요. 올해 4월에 너무 힘들었는데 한라산에 다녀왔어요. 10시간 정도 걸으니까 산이 내 감정을 쏟아내게 해줬고 시원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나는 걷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나도 그가 달팽이로 보인다. 그에게 캠핑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말을 부탁해보았다.

 

>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는 내가 준비가 안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불안해서 시작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캠핑은 특히 더 그런 것 같고요. 주변에 캠핑을 가봤던 사람이 있으면 낑겨서 가보는 걸 추천해요. 일단 가보세요. 가보고 나서 캠핑에 대해 알아보고 준비해도 늦지 않습니다. 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캠핑 장비를 구매하는 건지, 캠핑의 낯섬을 좋아하는 건지, 캠핑을 좋아하는 건지 잘 알아야 지갑이 얇아지지 않습니다. 캠핑을 가는 목적도 다 다를거라고 생각해요. 인스타용 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고 고생하려고 가는 경우도 있고 체험하려고 가는 경우도 있겠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시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아서 가기를 바랍니다.        



걷기는 내게 어떤 풍경과 느낌을 선사할까? 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도 백패킹을 가보고 싶어졌다. 그는 미니멀리즘과 제로 웨이스트에도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미니멀리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을 많이 봤는데, 거기에 집의 공간을 물건과 나누어쓰고 있다는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몇 평 남짓한 공간을 가구들, 옷가지들과 나눠쓰고 있는데 그것들이 정말 필요한지 의문이 들어요. 가구들에 잠식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맨 몸으로 할 수 있는게 이토록 없는지, 여러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내가 이름 붙이고 애정하는 물건들만, 딱 내가 이고 질 수 있는 물건들만 남기는 게 목표에요. 지금의 현실과는 괴리가 있지만 내 이상향은 그렇습니다.  


제로 웨이스트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보자. 


> 제로 웨이스트는 숙제 같아요.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다보니까 일말의 부채감도 들고 10년 뒤에는 바다에서 수영을 못하게 되거나 공기를 사서 마셔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돼요. 한 활동가가 한 달 동안 자기에게 나온 쓰레기를 모두 몸에 달고 다니는 걸 본 적이 있어요. 미니멀리즘처럼 내가 이고 질 수 있는 정도로만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에게 편리를 내려놓고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힘과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좋겠어요. 아, 한 가지 추천하고 싶은게 있어요. 씻을 때 알갱이만 사용할 수 있다는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샴푸바, 바디바, 고체 치약을 쓰면 편리하면서도 쓰레기를 줄일 수 있어요.    

    


그의 꿈은 무엇일까? 


> 무사히 할머니가 되는 것이요. 무사하다는 것은 죽임을 당하지 않고 죽이지 않는 것을 의미해요. 말로도 죽일 수 있어요. 오래오래 상냥함을 잃지 않고 싶네요.  


자세하게 듣지는 못했지만 그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5년 후의 그는 어떤 모습일지 물어봤다.

 

> 5년 뒤는 모르겠고 2년 계획은 있어요. 내년 2월에 퇴사를 하고 좀 놀고 공부도 하고 배우고 싶은거 배우다가 그 다음해에 호주로 워홀을 갈거에요. 1~2년 정도 워홀을 할거고 25년 겨울 쯤에 남미 여행과 밴드 해외 공연이 잡혀 있어요. 벤을 하나 빌려서 유럽이나 미국에서 버스킹을 해볼 생각이에요. 재밌을 것 같아요. 그 사이에 안정적으로 돈을 벌 방법을 찾을거에요. 없다면 이제 가난하게 그럭저럭 살아갈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어떻게든 되겠죠. 


인터뷰를 마치면서 호는 걷는 사람으로서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눈 기분이라고 했다. 걷는 사람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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