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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 Nov 17. 2019

건강이 돌아왔다.

잃고 나서야 알게 되는 소중함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계속 버텼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건강이 최고라고 다들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은 잃고서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제대로 알게 된다. 나도 그랬다. 그렇게 힘들면서도 '죽을병도 아닌데 퇴사를 해야 하나' 같은 생각을 가끔 했으니까.


    회사를 그만둘 즈음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직장인들의 고질병인 만성피로는 말할 것도 없고, 교대근무의 후유증 때문에 잠도 잘 자지 못했다. 늘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였다. 적게 먹어도 소화가 잘 안 됐다. 반면, 체중은 이상하리만치 잘 불어났다. 회사에 다니며 얻은 허리와 어깨 통증은 체중이 조금만 증가해도 심해졌다. 감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더 적게 먹다 보니 기력도 같이 떨어졌다. 모자란 에너지 내에서 나름대로 운동도 해봤지만 미칠듯한 피로감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를 악순환에 빠져 허덕이고 있었다.


    몇 달 내내 감기에 걸리고 낫기를 반복했다. 찬물을 조금 마시거나, 책상 유리에 맨살이 닿으면 바로 다시 감기에 걸렸다. 그러다 보니 한여름에도 종종 두꺼운 점퍼를 입었고 일 년 내내 찬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피부에도 문제가 생긴 건지 아주 사소한 상처도 모두 흉터로 변했다. 하체가 늘 퉁퉁 부었다. 삶에 생기라곤 하나도 없었지만, '이 정도는 버텨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당연한 이치지만 그런 상태가 이어지다 보니, 정말로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는 순간이 왔다. 그제야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고, 이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몸이 급하게 망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브레이크를 걸어야 했다.


    기대와 달리, 회사를 그만뒀다고 순식간에 건강이 회복되지는 않았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오히려 처음 몇 달은 몸이 더 아팠다. 그러나 다행히 시간은 나의 것이었다. 조금 늦게 잠들더라도 충분히 자고 눈이 떠지는 시간에 일어났다. 간편식을 멀리하고 매끼 스스로 만든 요리를 먹었다. 운동을 꾸준히 했고, 지치거나 아프면 기운이 들 때까지 쉬었다. 몸 상태가 나빠지는 느낌이 들면 만사를 제쳐두고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며칠 동안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를 먹이고, 재우고, 돌보는 일에만 집중했다. 그러자 조금씩 몸 상태가 돌아왔다. 에너지가 생기니 저절로 부지런해졌다. 역시 무기력은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체력의 문제였다. 제대로 돌보지 않아 약해진 몸에 채찍질만 해대는 건 옳지 않았다.


    지금도 왜 회사에 다닐 때 그토록 몸이 나빠졌는지 의문이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데, 그 때문이려나. 회사를 더 다녔다면 점점 회복할 수 없는 지점으로 건너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잃었던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면서 계속 조심해야 할 부분이 늘었다. 이 또한 내 선택의 결과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누군가 비슷한 상황에서 조언을 구한다면, 한번 망가진 건강은 완전히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앞으로의 삶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걸 꼭 말해주고 싶다. 원하는 미래에 '건강한 나'가 포함돼 있다면 신중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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