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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 Dec 17. 2022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일 뿐

세상을 보는 두 가지 시선

환원주의와 전체론


 우리는 뭔가를 파악하려고 할 때 잘게 쪼개서 보거나 중요한 몇 가지 만을 떼어서 보고 싶어 합니다. 그게 이해하기 편하니까요. 아주 단순하게는 서로 정반대인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눠 생각하기도 하고, 조금 복잡하게는 여러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고민해보기도 하죠. 이런 사고방식을 환원적 사고라고 합니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학문이 환원적 사고의 결과물이고, 일상의 상황을 이해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하죠.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사고방식이에요. 하지만 구분이 너무 단순하면 너무 많은 것을 오해하게 되고, 구분이 너무 복잡해지면 너무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인간에게 매우 익숙한 사고방식이 하나 더 있어요.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아무런 노력도 필요하지 않죠. 우리는 무엇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어도 그냥 느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는 여름이 어떤 것인지 그냥 이해하고 있어요. 뭔가 길게 설명해볼 수도 있지만, 아무리 길고, 아무리 많은 요소로 쪼개 설명한다고 해도 여름이 무엇인지 그냥 알고 있는 것보다 적은 부분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전체로서 그 자체는 그저 부분들의 합이 아니고, 하나의 원리로만 설명될 수 없어요. 이런 사고방식을 전체론적 사고라고 합니다.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더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환원적 사고를 취할 때가 있어요. 주로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낄 때, 더 나아지고 싶을 때, 분석을 통해 뭔가를 얻고자 해요. 사회가 우리에게 계속 우리 자신을 정의하고 설명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죠. 때로는 원래의 우리 자신보다 더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보여야 해요. 그러니 분석하게 되고, 분석의 결과에 따라 한두 가지 면만 콕 집어서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죠. 우리는 매우 복잡한 존재이고, 또 유기체이기 때문에 모든 부분은 연결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거든요. 변화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이 전혀 간단하지 않습니다.

 인간에 대한 구분법이 수도 없이 많아요. 몸과 정신으로 구분할 수도 있고, 각각을 더 세세하게 나눠볼 수도 있어요. 이론에 따라 정신을 나누는 구분도 다양해요. 프로이트는 이드와 자아, 초자아로 정신을 구분했고, 융은 자아와 자기(self)로 나눴던 것처럼요. 감정이라는 개념도 신경과학과 정신분석학, 심리학이 각각 바라보는 관점과 제시하는 해석이 전혀 달라요. 이런 해석들이 유용하기는 해요. 하지만 다양한 오해를 낳기도 해요. 명사와 형용사 몇 개로 뚝딱 설명할 수 있다 보니, 스스로를 이런 사람이라고 규정하게 되거나,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생각처럼 되지 않았을 때 힘들어하게 되죠. 자기 자신에 대한 속단과 오해, 좌절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그럴 때 전체론적 사고가 필요해요. 우리는 그저 몸이 아니고, 그저 정신이 아니고, 그저 명사 몇 개와 형용사 몇 개의 조합이 아닌 우리 자신이에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사실 어떤 설명 없이도 그냥 느낄 수 있어요. 모든 구분은 이 느낌을 잠시 분리해 담아주는 상자에 불과해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분석하지만, 그런 시선을 오래 유지하다 보면 '통합된 존재로서의 나'에 대한 느낌이 희미해질 수 있어요. 조금은 기계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자연스러움이 덜 해집니다. 어차피 인간은 기계가 아닙니다. 기계 비슷한 것도 될 수 없어요. 그러니 상자 안에 들어갈 필요 없어요. 그저 가끔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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