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특이한 한 해였다. 시작은 실망이었다. 오래 알고 지냈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사람에게 크게 실망했던 일이 있었다. 그 친구는 문학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했다. 그 친구가 추천해 준 책과 영화가 나에게 울림을 줬다. 인간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친구였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현실적이고 많은 것을 이루고자 하는 친구였다. 보기 드물게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이런저런 구차한 면에 대해 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좋은 것들을 만들어내려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존경했다.
슬프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슬펐다. 선과 악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고맙다. 그 친구가 꿈꿨던 것들이 나의 꿈이 되기도 했기에.
법의 원리에 대해 공부할 일이 있었다. 알고도 행할 때,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때, 그래서 나쁜 결과로 이어질 때, 그때 법은 책임을 묻는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은 꼭 냉정하고 차가운 모습을 하고 있지 않고, 안타깝고 슬픈 모습을 하고 있기도 했다. 강해지는 만큼 선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평화에 대한 멋진 대화를 나눴다. 신뢰와 수용이 곧 평화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 그자체라는 말도 덧붙였다. 가치있는 것들은 대게 그러한 것 같다.
재작년쯤에 삶이 궁금해서 죽음의 부정이라는 책을 읽었다. 인간은 죽음을 알고도 살아가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했다. 생로병사는 예견되어 있고, 고통이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어떤 고통을 겪을지는 내가 선택하고 싶어졌다. 살고자 하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떤 고통이 필요한지 생각했고 감당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선택한 고통이 나의 삶을 지탱해준다는 걸 안다.
여러모로 좀 어려웠던 한해였는데도 돌아보니 할만 했던 것 같다. 옆에 있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힘든 순간에 가만한 위로를 건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것에 감사한 한해였다. 나 자신에게도 고맙다.
올해는 모르던 것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렵다. 내가 달라질 때마다 세상이 조금씩 다르게 다가온다. 삶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