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농촌들녁의 식물과 경관
어제 내린 비로 밭이 어떻게 변했나 뽀뇨와 함께 밭으로 갔다. 대정까지 30분 걸리는 시간이 심심하다는 뽀뇨지만 스무고개 몇번 하면 밭에 도착한다.
역시 밭은 질어서 몇 분 되지 않아 장화가 흙으로 무거웠다. 오늘은 밭일 하기가 어려울듯하여 원래 농장운영계획도면에 그렸던 가을, 겨울 두둑과 고구마, 콩, 호박 두둑에 경계를 표시하려고 지지대를 꼽았다. 매번 올때 마다 작은 두둑을 한두개씩 만들었는데 아직 남은 땅이 많다. 남들은 채소를 일부 수확하고 있는데 트랙터 를 기다렸고 두둑을 조금씩 만들고 조금씩 심느라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두둑에 나무틀을 박고 제대로 두둑을 높여 만들었는데 가면 갈수록 두둑높이도 낮아지고 나무틀도 설치하지 않았다.
비교해보니 꽤 차이가 많이 났다. 틀두둑의 채소들은 뿌린데로 가지런히 잘 자라고 있는데 반해 틀두둑을 세우지 않고 두둑을 낮게 만들었더니 비에 씨앗이 쓸려나갔는지 새싹들이 보이지도 않았다. 작게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작정하고 자전거를 싣고 왔다. 해안도로에 자전거길이 있는지 몰랐는데 와보니 도로 만큼 넓어서 놀랐다. 시멘트 농로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넓은 도로로 나왔는데 바닷가에서 돌고래들을 만났다. 내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지 우리가 자전거 타는 방향으로 돌고래들이 헤엄쳤다. 아이처럼 소리를 질렀다.
농로를 따라가며 자전거를 타다보니 여러 식물들을 만났다. 우리 텃밭에도 있는 왕모시풀이 있는데, 이건 이름처럼 잎이 시원시원하고 마치 깻잎처럼 생겼다. 우리 밭 입구에는 까마귀쪽나무가 있는데 은주씨는 이걸 보더니 올리브 아니냐고 했다. 정말 올리브 열매를 똑같이 닮았다. 제주에선 구럼비나무라고도 불리는데 열매는 식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맛이 어떨까? 도전해보기는 싫다.
제주는 들녁이 정말 풍요롭고 아름답다. 청보리가 누렇게 익어서 바람에 흔들리고 감자는 하얗게 꽃을 피웠다. 며칠전까지는 양파가 대를 올리며 꽃을 피우기도 했고 또 수확하지 않은 무가 대를 올리며 수수한 꽃을 피웠다.
사람들은 농산물의 과일만 안다. 그 과일이 꽃을 피우기까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자라왔는지를 전혀 모른다. 나 또한 어떤 씨앗이, 어떤 새싹이, 어떤 모종이 그 농산물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아마 요즘 농부들 중에 모르는 농부들도 꽤 있지 않을까.
아름다운 농촌 경관을 바라보며 쉼과 여유, 치유는 멀리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와 함께 타는 자전거, 그 옆으로 여유를 즐기며 헤엄치는 돌고래, 보리가 익어가고 감자가 꽃을 피우는 들녁.. 이것이 바로 행복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