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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Jun 15. 2021

언제나 제자리

황집중의 단련일기 9호

달리기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나를 새삼스럽게 여기지만 누구든 나처럼 달리기를 하면 하나도 특별할 게 없다. 내 달리기 속도는 걷는 속도에서 조금 빠른 정도로 옆 사람과 대화를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이다. 평소처럼 걷다가 지면에서 동시에 두 발을 띄울 의지만 2% 있으면 달리기를 할 수 있다. 내가 10K 마라톤에 참가한다고 하면 나를 더더욱 새삼스럽게 여기지만, 내가 여러 대회에 참가해본 바에 의하면 10킬로는 평소 달리기를 안 하던 사람이라도 신체에 딱히 불편한 곳이 없으면 어쨌든 완주는 가능하다. (다음 날 근육통으로 좀 고생스러럽겠지만.) 국제 마라톤 대회가 아닌, 나이키나 아디다스와 같이 스포츠 의류 브랜드의 마라톤 대회에 나가면 친구들과 셀카 찍으며 즐겁게 뛰어다니는 젊은이(?)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물론 나는 매우 집중(!)해서 열심히 뛰어야 한 시간 반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들어올 수 있다.


주중에도 아주 가끔 달리지만 보통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달린다. 같이 출발해도 각자 그날의 몸 상태와 기분에 따라 속도는 저마다 달라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따로 또 같이 움직인다. 함께 달리다가 친구들이 시야에서 멀어진다 해도 나를 재촉하며 빨리 달릴 순 없다. 무리하게 몸을 움직였다가 무릎 부상을 겪은 적이 몇 번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조급해도 나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달리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뒤처진다는 생각보단 주변을 돌아보며 페이스를 지키려고 한다. 날아가는 새와 산책하는 개들, 바람에 흐트러지는 풀의 움직임을 구경하노라면 오늘도 역시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앞선 글에서 눈치챘겠지만, 달리기를 좋아해도 달리기 실력이 좋은 건 아니다. 여러 해 달려도 실력은 제자리다. 성장을 기대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가끔 생각해본다. 소상공인과 비즈니스의 차이일까. 동네 가게는 매년 꾸준한 모습으로 장사를 유지할 수 있지만(이런 모습이 장점인 곳도 있고), 비즈니스는 해마다 성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던데. 오디션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당신의 실력은 뛰어나지만, 저번보다 발전이 없어'서 떨어지는 참가자들. 아무튼 성장하고 싶으면 실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발전하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제자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꾸준히 한다고 저절로 느는 건 아니라는 걸 달리기하면서 깨닫는다. 속도를 단축하는 여러 트레이닝 방법이 있겠지만, 전혀 관심이 없는 거로 보아 달리기에 있어선 소상공인 스타일인가 보다.  


그저 원하는 건 달리기만큼은 꾸준히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 애써 실력을 늘리지 않고 같은 속도를 유지하는 건 아마도 오랫동안 좋아하고 싶어서 그런 듯하다. 언제부터 달리기를 좋아했을까. 갑자기 시간을 거꾸로 돌려본다. 생각해보니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달리기라면 질색했었다. 기관지가 건강하지 못해 초등학생 땐 오래달리기를 하다가 중간에 호흡곤란이 와서 거의 울기 직전에 중도 포기했던 적이 있다. 달리기 말고도 모든 운동에 젬병이라 중고등학교 땐 체육 점수만큼은 엄마도 눈감고 넘어갈 정도였다. 어느 날 가족끼리 배드민턴 치러 나갔을 땐 아빠한테 혼났던 기억밖에 없다. (역시 가족끼리는 가르치는 게 아닌 듯. 아빠도 첨엔 즐겁게 칠 생각이셨겠죠. 그쵸?) 단 하나 잘했던 건 악으로 버티는 오래 매달리기였는데, 다른 건 못 하니 그거라도 하나 해내야 할 거 같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일한 장기는 ‘버티기’인가 보다.


이랬던 내가 달리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일 년에 한두 번은 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어른이 되었다니 이거야말로 참 새삼스럽다. 그런데 ‘달리기 = 재밌는 것' 이라 생각하면서도 올해 유난히 밖으로 나가는 게 귀찮다. 이런. 이렇게 달리기에 대한 사랑이 식는 건가. 생각해보면 달리지 않을 이유는 세상에 차고 넘친다. 비가 와서, 바람이 세서, 미세먼지가 나쁨이라, 배가 고파서, 오늘은 기운이 없으니, 마감이 있어서 등등 게다가 달리기 복장으로 갈아입는 게 왜 이렇게 번거로운지. 할 일 순위에서 달리기는 자꾸만 뒤로 밀린다.


달리기에 권태기가 찾아오는 건 어쩐지 슬프다. 전처럼 달리기 생각만 해도 산책을 앞둔 강아지처럼 신나거나 하진 않아도 몇 년을 함께한 달리기와 헤어지긴 싫다. 그래서 5월 내내 ‘달리기해야 하는데~’ 하고 노래를 부르다가 마지막 주에 겨우 발걸음을 떼었다. 혼자 뛸 의지가 없으니 러닝 앱에 의지해 보기로 했다. 코치 목소리의 도움을 받아 일주일에 할당된 3번의 목표를 간신히 채웠다. 오랜만에 뛰어서 그런지 내 몸은 수년간 달린 걸 또 잊고 마치 처음 뛰는 사람처럼 묵직하다. 언제나 제자리. 나는 만년 초보일 수밖에 없을까. 하지만 뭐 어떤가. 다음 주에도 또 뛰고 싶어졌으니 나로선 성공이다. 




달리면서 만나는 반가운 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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