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호 Jan 07. 2023

1월 스위스 사람들은 왕관을 쓴다

스위스 사람들이 겨울을 행복하게 지내는 방법

오직 한 겨울 스위스에 와 본 사람들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거리마다 한 두명씩 아이들이 왕관을 쓰고 아주 행복한 얼굴로 돌아다니고 있는 거였죠. 그것도 뭔가 조금은 허술해 보이는 왕관이었죠. 처음에는 그냥 뭐 아이들끼리 게임을 하다가 벌칙으로 저런 걸 쓰고 다니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왠걸, 그날 따라 여기 저기에서 해맑게 왕관을 쓴 아이들을 볼 수 있었어요.



게다가 왕관을 쓰고 씨익 웃으면서 기분 좋게 커피를 내려주는 어느 바리스타도 발견하고 나서는 깨달았죠. 아이들만 쓰는 게 아니라면...?


아, 이 왕관은 스위스 사람들의 전통이구나!

그리고 나서 마트에 있는 빵집을 가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그 허접하던 왕관의 정체를요! 바로 이 빵을 사면 주는 거였어요. 이름하여 드라이쾨니히 케이크, 독일어로 Dreikönigskuchen입니다. 직역하자면 3명의 왕 케이크입니다. 단어 하나가 참 길죠? 독일어는 다 원래 이렇답니다.


빵도 생긴게 참 귀여워요. 전반적으로 동그란 여러 개의 빵이 가운데 큰 빵을 삥 둘러서 배치되어 있어요. 잘 보면 바로 왕관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실제로 이 빵을 사면 왕관도 하나 같이 준답니다. 바로 이 빵을 먹고, 아이들이 왕관을 쓰고 다니는 거였어요.


사실 이 빵과 왕관은 사시 사철 아무때나 파는 것이 아니었답니다. 바로 일년에 딱 한 번 이 빵을 살 수 있는 날이 정해져 있는데요, 바로 삼왕절, 우리나라에서는 동방박사축일(Epiphany)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1월 6일입니다. 사실 기독교에서 기념하는 날 중 하나인데, 세 명의 왕(동방박사)이 예수님을 방문한 날이라고 해요. 그래서 세 명의 왕을 기념하여 왕관을 쓰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있는 스위스 독일어 사용 지역에서는 특히나 이 행사를 전국적으로 크게 기념하더군요. 비록 휴일은 아니었지만요. 그래서인지 딱히 기독교가 아닌 사람들도 관습적으로 저 드라이쾨니히 케이크를 사먹고, 왕관을 쓰곤 한답니다.



재미있는 점은 저 빵을 사면 여러 빵 덩어리 중에 하나에 조그마한 하얀색 플라스틱 모형이 들어있는 겁니다: 바로 동방박사를 형상화 한거라고 하는데요,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해요. 그래서 가족이 함께 빵을 먹다가 이 모형을 발견한 사람은 왕관을 쓰고 왕의 축복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꽤나 귀여운 전통이죠?


아니, 먹을 것에 장난을 치면 어떻게 해? 라고 하실 지도 모르겠어요. 한국사람이라면 당연히 바로 튀어나올 반응이겠지요? 하지만 다행히도 이 플라스틱은 씹어도 전혀 문제가 없는 말랑한 재질로 되어 있답니다. 덕분에 먹다가 나온 모형은 조금 못생긴 모양으로 남아있기도 하는 부작용이 있긴 하죠.



사실 겨울철 스위스는 날씨가 참 좋지 않아요. 한 달 중에 날씨가 맑은 날은 아주 드물고, 대부분이 흐리거나 비, 눈이 오는 날이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이런 겨울 중에 있는 조그만 축제라도 스위스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으로 아주 소중하게 즐기고는 한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스위스를 이 시기에 여행하신다면 꼭 빵집에서 이 빵을 사 먹어 보시길 추천드려요. 꽤나 맛도 있거든요.


겨울 스위스를 여행하시다가 왕관을 쓰고 있는 아이들을 본 당신에게도 한 해 내내 축복과 행운이 가득하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