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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다 Jan 10. 2023

PD의 아침, 엄마의 아침 - 2

지난번엔 내가 아침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썼었나.


돌아보면 내 인생에 처음으로 내 페이스대로 맞이한 아침들이었다. 

왜냐하면 기억나는 시절부터 우린 늘 엄마가 "학교가야지" 하면서 깨웠고 타의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던가. 고 3시절엔 가장 간절했었고 대학 시절엔 술로 지샌 밤에 양보했었고 조연출 시절엔 고스란히 열정에 갖다바쳤던 아침. 


그.러.나.

엄마가 되고난 후부터 아침은 또 달라졌다. 




여기서부터 절망의 아침이야기...


나의 아침은 또다시 타의적으로 시작된다.


일단 아이들은,

무지 일찍 일어난다.


마치 완충된 휴대폰이 가뿐하게 켜지듯 새벽 6시 또는 7시에 반짝 하고 일어나는데, 이런 걸 보면 인간은 원래 아침형 인간이 맞네, 태양이 뜨면 따라 일어나는 자연인 맞네, 도대체 이런 인간이 무슨 연유로 십대가 되면서부턴 늦잠을 못자서 안달인걸까, 실증적으로 궁금해진다.


눈을 뜬 아이들은 바로 본론이다. 워밍업 따위 없다. 스프링처럼 튀어올라 "엄마 나가자" 하는데, 세상에 목도 안 잠긴다. 반면에 나는 그때쯤 밤의 전쟁에 너덜너덜 패배하고 난 후다. 늬들은 기억도 못하겠지만 너희들 밤새 돌아가며 울고 이불을 걷어차고 기저귀에 쉬를 하고 물을 찾고 없어진 쪽쪽이를 찾아내라고 난리였단다... 


둘째가 울 때마다 반사적으로 시계를 보는데 어제만 해도 12시반, 2시, 2시반, 3시반, 5시... 나는 한두시간마다 깼다. 잠들만하면 깨고 잠들만하면 깨고... 엇박이 계속되면 아침엔 두통과 이명이 난다. 하지만 아이들은 사정을 봐주지 않지.




우리는 일어나서부터 아침 9시, 첫째의 어린이집 등원을 바라보고 달린다. 세상 급할 것 없는 아이와, 첫째둘째 밥먹이고 옷입히고 씻기고 정리하고 그와중에 화장품을 찍어 바르고 출근가방을 싸야하는... 버거운 미션에 봉착한 나. 옛날 KBS예능 중에 "스탠바이 큐"라고 있었다. 단단다라 당~ 당~ 하는 서부극 음악이 흐르면 99초 안에 미션을 해내야 성공하는 프로였다. 마치 나는 그 프로에 갇힌 듯 아침마다 달린다. 성공한 적은 거의 없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침마다 "밥먹어!" "밥먹으랬지!" "엄마가 셋센다" 소리지르는 엄마들이 좀 별로라고 생각했다. 나는 꼭 프랑스엄마처럼 우아하게 육아해야지... 그런데 요즘 내가 그러고있다. 밥 한그릇비우는데 천만년이 걸리니 목소리가 안 올라갈 수가 없다. 어떨 땐 다 식은 국도 뜨겁고 멀쩡한 입안이 따갑고 손에 힘이 없단다. 물론 아이가 왜 저러는진 안다. 알고 너의 박자에 맞춰주고도 싶은데... 나에겐 어엿히 약속된 회의시간이 있고, 선생님에게 고지받은 등원시간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아이 밥 한 숟가락에 내 머리말리기, 밥 한 숟가락에 내 양치질, 밥 한 숟가락에 선크림, 밥 한 숟가락에 비비크림...  달린다. 그 와중에 둘째는 촘촘하게도 울고!




바쁜 건, 그래도 바쁠뿐인데

요즘에 첫째는 일춘기다. 세상 모든 게 맘에 안 들고 생트집을 잡고 싶은 시기. 

나는 아침마다 첫째의 감정받이가 된다.


어제는 아침에 둘째와 손을 맞잡고 언니 깨우러 가자~ 하고 다정히 들어갔더니 엄마가 쳐다봐서 자기가 스스로 일어날 기회를 놓쳤다는 둥, 생트집이 시작됐다. 달래주다 안되서 나오려니 이번엔 나가지 말라고 난리... 


이 시기 아이들에겐 자아를 관장하는 후두엽이 먼저 발달하고 이 자아를 눌러줄 수 있는 전두엽은 아직 발달하지 못했다고 읽었다. 그러니까 과학적으로 저 뾰족한 자아만 튀어나와서 나를 아프게 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그건 그거고, 그 어린 딸도 나에게 마구 감정을 집어던지면 나는 너무 아프다. 아이의 전두엽으로서 부정적인 감정만 흡수하고 있자면 서글프기까지 하다... 


"엄마 해온이(동생) 좀 저 방에 가둬줘!!!"

"해온이가 나 때렸어!"

"해온이가 내 가방 맸어!!!"

"모두 나 보지 마!!!"

"나 양치 스스로 못하겠어어어"

"나 오늘 기분이 안좋아~~~"

찡찡 찡찡...


결국 받아주다 받아주다 나도 폭발한다. 이 날 아침은 결국 밥을 50분동안 깨작깨작 대는 아이에게서 밥그릇을 뺏고서야 끝이 났다. 

"너 다시는 밥먹지마... 절대로! 밥먹지마!!!" 

아이는 서럽게 운다. 

"그만 좀 울어어!!!!!"




오늘 아침에도 나는 패배했다. 다섯살에게 화를 냈다는 죄책감도, 패배감도, 절망감도... 다 싣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내려준다. 유치하게 입 꾹 다물고 아이에게 무뚝뚝한 인사를 건넨 뒤 뒤돌아보면, 

아직 나의 아침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나는 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뒤 회사 1층 카페에 앉아 아침을 되짚는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했어야 할까, 얘는 나한테 왜이럴까, 나의 아침은 왜 이모양일까... 이 지경이어도 휴대폰은 울린다. 피디님 빨리 회의실로 오시라고... 앞으로 무수한 회의와 컴플레인과 결정꺼리가 나를 기다리는데, 나의 감정에너지는 아침 9시에 바닥났다. 스탭들에게 드러내면 안되는데, 또 어디 에너지를 끌어다 틀어막지...? 원망할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는 아침. 얼룩덜룩 감정으로 오염된 아침. 타이레놀 두 알을 털어놓고 1층에서 4층 회의실로 간다.


어린이집에 등원할 때마다 선생님은 대번에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채신다. 아이를 좋은 컨디션으로 넘겨드리지 못한게 죄송할 때도 있다. 또 내 잘못 같다.




여기까지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쟁같은 내 아침에 대해서, 투덜대고 불평하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안그러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어떻게 이 시기를 보내야하는지, 어떻게 화내지 않고, 어떻게 나도 상처받지 않고 아침을 흘려보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한창 산후 육아우울증을 앓았을 때,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본 적이 있다. 세심히 내 얘기를 들은 선생님은 나에게 수면을 도와주는 약을 처방해 주셨다. 이 모든 복합적인 문제의 가장 중심에, 수면이 있다고 했다. 깨끗이 자야만 신경이 느슨해지고 다시 아침을 활기차게 맞이할 수 있다고. 

지금의 나는 느슨해질 짬이 없어 매일 아침 끊어질 듯 팽팽한 채 일어난다.  아마 많은 워킹맘, 워킹대디들이 팽팽해진 채 아침을 맞이하겠지. 지금은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어느날. 회사 근처에서 우연히 선생님과 산책나온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전쟁같은 아침을 보내고 나와 헤어지면 어떤 기분일까. 나처럼 속상할까? 아니면 별 생각도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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