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헬스란 운동을 안 좋아한다.
요가는 하고나면 몸과 마음의 싱크가 맞혀진달까 그런 느낌이 좋고, 등산이나 러닝은 계절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좋고, 팀 스포츠는 함께하는 사람들과 통하는 느낌이 좋은데 헬스는 그런 게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저 지겹고 무식한 쇠질로밖에 안 보이는데(전국의 헬스인 죄송합니다…) 도대체 사람들은 헬스를 왜 하는걸까.
그러던 나에게도 헬스의 거부할 수 없는 물결은 밀려들었다. 시작은 요가의 ‘머리서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아기를 낳고 요가를 하는데 온몸의 근육이 녹아 머리서기는커녕 다리도 못 들어올릴 지경인 거다. 아 결국 근육을 만들어야하나 결국 헬스인가…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데 어떤 운동이든 중급으로 못 올라서고 초중급에 머무는 편이기도 했다. 이것 또한 결국엔 근육이 없어서일까, 결국엔 헬스인건가 마침내 헬스장에 등록하게 되었다.
아 그, 그렇다고 헬스를 좋아하게 된 건 아니고, 주 5일을 못 채우면 약간 불안해지긴 하지만, 여행가면 근처에 헬스장 있나 찾아보긴 하지만, ‘오운완’ 해시태그 써보긴 했지만… 저얼대 ‘헬창’ 그런 건 아니고, 단언컨대 나는 헬스를 싫어한다.
그러나 인정하는 건, 헬스엔 매력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매력을 뛰어넘어 ‘진리’가 있다. 절대 다른 운동에서 발견할 수 없는 ‘인생의 진리’. 무거운 쇠봉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이 단순한 운동에서 발견한 나의 진리를 지금부터 설파해 보겠다. 운동의 원리만큼 단순한 진리지만 나는 이걸 헬스를 하면서야 깨닫게 되었다.
운동을 9개월쯤 했을 때일까. 나는 아직도 초보 수준의 스쿼트를 하고 있었다. 워낙 근력운동에 소질이 없어서인가 1개월은 스쿼트 자세 연습만 했고 3개월은 거의 빈 봉만 들다가 그때도 ‘헬린이용’ 무게들을 깨짝댈 때였다. 그런데 그날은 트레이너 선생님이, 별안간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회원님 아무리 봐도… 회원님이 못 하겠단 말을 못 믿겠어서요”
“?”
“우리 40kg 한번 들어볼까요”
“네????? 40Kg이요??? 아니 제가 몸이 50kg 인데 40kg을 어떻게 들어요 선생님…”
“못 들면 내려놓으면 되죠. 한번만 해봅시다!”
“안돼요 선생님 못해요(단호)”
“음… 40kg 들어봅시다”
내가 매우 강경하게 징징댔는데도 선생님은 봉의 양쪽에 10kg짜리 추를 턱턱 끼웠다. 보통 여자 헬스인이 최고로 들면 60kg을 드니까 40kg는 최소 중급은 될만한 무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헬스를 하며 얻은 거라곤, 주 4일씩 운동을 해도 변화없는 몸, 닭가슴살을 세끼 갈아먹어도 붙지 않는 근육, 측만증 때문에 애초에 근육 활성화가 힘든 구조의 몸, 그러니까 저 봉을 들지 못할 요소들 뿐이었다. 나는 헬스에 소질이 없었다.
그러나 비장해진 선생님은 내 어깨에 봉을 걸쳐주었고 나는 벼랑 끝에 밀려난 아기새마냥 거울 앞에 섰다. 아무리 봐도 못 들 게 뻔했다.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무게였고 들려면 몇 개월에 걸쳐 서서히 단련해야 할 무게였다. 그러나 팔짱끼고 선 선생님의 서슬이 하도 퍼래서 나는 울상으로 스쿼트 자세를 취했다.
손에는 익숙한, 차갑고 까끌까끌한 봉의 감촉. 이거, 하다가 다치는 게 아닐까, 선생님은 너무 무책임한 게 아닌가, 갑자기 20kg을 올리다니, 앉다가 뒤로 넘어지진 않을까… 실로 오바가 아닐 수 없을만큼 몇초동안 무수한 걱정을 하며 나는 늘 연습한대로 다리를 굽혔다. 그리고는 배운대로 무릎을 먼저 펴고, 두 발로 무게를 받으며 다리가 안으로 말려들지 않게, 엉덩이 뒤쪽의 힘으로 … 아 너무 무겁다, 지구처럼 무겁다… 으으읏차…!!!
“회원님!!! 되네요~!!!!!”
나는 번듯이 일어서 있었다. 어라라…
“자 열다섯 개 가시죠!”
어리둥절함도 잠시, 아 ㅅㅂ… 괜히 일어섰나, 일어서는 게 한계였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또 정확한 자세로 앉았다, 일어서고… 또 앉았다, 일어서 버리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온 얼굴은 시뻘겋게 구겨지는데 열개를 넘어서고, 열다섯개를 채웠다.
“아니, 회원님~!!!”
선생님은 나보다 더 감격한 얼굴로 봉을 받아주었다.
아이고 아이고 으어아아악…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다리가 터질 거 같고 심장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아니 근데 진짜 되긴 되네???
이후에 선생님이 한 말을 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회원님… 이제 보니까 회원님은 근육이 문제가 아니라 ‘정신머리’가 문제였네요!”
고3 담임선생님한테 들어본 이후로 얼마만에 듣는 단어인가! 갑자기 나는 빵 터졌다. 그렇다. 내가 9개월동안 계속 초보 ‘헬린이’에 맴돌고 있었던 건 내가 ‘정신머리’가 글러먹었기 때문이었다. 몸의 근육이 아니라 나는 ‘정신근육’을 키워야 할 사람이었다.
나는 ‘적당한’ 수준의 무게를 쳐보고 안되면 ‘안되는구나’ 힘들면 ‘힘들구나’ 하고 말았다. 근육이 성장하려면 적당하지 않은, ‘과한’ 무게를 꼭 한번은 들어야하는데 나는 굳이 그러지 않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무거운 봉을 고작해야 열다섯번 들고, 그후에 회복하는 데 시간을 쏟기보다, 봉 앞에 서서 ‘얼마나 무거울까’, ‘얼마나 힘들까’,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못할것같은데’ 두려워 하는 데 시간을 쏟는 사람이었다.
이 즈음 나는 처음 기획한 프로그램의 런칭을 앞두고 있었다. 일할 때도 난 ‘과연 이게 될까’, ‘사람들이 겨우 이런 걸 좋아할까’, ‘이러다 창피나 당하는 게 아닐까’ 두려워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하고 말지, 난 늘 하기보다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두려워하면 역시 몸은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힘을 풀고 포기하고 싶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스쿼트 15개를 하는 시간은 1분도 되지 않는다. 하는 동안 지구를 짊어진 듯 무겁지만 오히려 이 1분을 잘 해내는 방법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힘들다는 생각도 하지말고, 무겁다는 생각도 하지말고, 무엇보다 ‘하 이제 다섯 개 한거야? 내가 열다섯 개를 할 수 있을까… 그냥 오늘은 열개만 할까, 그래 안 하는 것보단 낫잖아…’ 같은 타협도 하지말고, ‘그냥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근육에 힘이 빠지고 부상의 위험은 올라간다. 우리 몸의 코어는 ‘정신근육’임에 틀림없다.
지금의 나는 스쿼트로 50kg을 든다. 딱 내 몸만큼 드는데 1년이 걸렸다. 여전히 힘들고 하기싫지만 요즘은 생각을 내 뜻대로 ‘그친다’. 그만 두려워해, 고작 쇠봉이잖아! 그 시간에 그립을 조아매고 몸을 푼다. 차갑고 까끌까끌한, 익숙한 감촉. 해보지뭐, 다칠 것 같으면 내려놓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