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와서 외로움을 채우려고요.
늙어가는 것에 관한 고찰
늙어간다는 건 어쩌면 아픔보다 외로움이 더 먼저 찾아올지도 모른다.
어릴 때 길 가다 넘어지면 꼭 아픈 것보다 부끄러운 게 더 클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주변 어른들의 도움으로 외로움과 부끄러움이 가시고 나서야 눈물이 흘렀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어른들의 도움과 배려로 건강히 자라나니 이제는 아무 이유 없이 어른인 나를, 또 다른 어른인 다른 사람을 돕는 어른이 찾기 어려워졌다.
방금 횡단보도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오시던 할아버지가 넘어지셨다. 할아버지는 아픔보다는 멋쩍지만, 그 주름에 폭 깃든 밝은 미소로 건너오는 맞은편 어른들을 바라봤다.
나는 자전거를 세우기 위해 지체 없이 손을 뻗었고, 함께 걷던 열댓 명의 사람 중 단 한 사람만 나와 함께 손을 뻗었다.
손을 뻗지 않은 다른 이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래, 늙어간다는 건 그렇게 혼자가 되는 걸 수 있으니 말이다.
길가에 넘어져 꼭 어린아이처럼 멋쩍게 웃던 할아버지도, 바삐 걷던 걸음에 어쩌면 장애물이 생겼다 느껴 피한 사람들도, 도울까 말까 수도 없이 마음으로 고민한 사람들도, 그냥 도움이 필요하니 도운 나와 한 남자분도.
그저 그렇게 혼자가 되는 것은 피할 길 없이 각기 다른 모습의 외로움이 쌓여 늙어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그래도 마주 오던 열댓 명의 사람들보다 그 좁은 길에 넘어져 사람들의 걸음에 맞춰 날리는 먼지를 보고 있던 할아버지가 가장 외로웠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도움에 인색해진다.
요즘은 어린아이에게조차 도움이 낯설어지곤 하니까.
그래서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도움이 난무하는 세상이면 좋겠다.
내가 어릴 때, 네가 어릴 때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냈으니까, 지나가던 아주머니의 귀엽게 생겼네라는 한마디 말마저 애정을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늙어가는 건 피할 수 없지만, 외로워지는 건 채울 수 있다.
하루하루 늙어가는 여정 속에 내 손이 누군가의 외로움을 채워주면 좋겠다. 내 발이 누군가의 외로움과 함께 걸으면 좋겠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놀이터 모래바닥 위에 옆집 언니도 혼자서 흙장난하던 나랑 소꿉놀이를 해준 것처럼, 이름도, 대화도 나누지 않은 손녀딸뻘의 여자아이가 넘어진 할아버지의 자전거를 세운 것처럼.
엄마의 태를 떠나 작든 크든 받아온 분명한 사랑을 다시 나누는 일은, 사실 당연한 일일테니 말이다.
그 대상이 누구든 우리가 삶의 마지막까지 타인의 외로움을 채우는 일에 지체가 없기를, 또 그 누구라도 함께 늙어가는 길에 외로움이 조금은 덜 깃들기를.
또 이렇게 기도하기 위해서 오늘의 경험이 내게 온 것임을, 이렇게 생각하면 어떤 순간도 헛된 것이 없으니 모든 틈이 소중한 우리의 인생이 조금 더 따뜻하기를.
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