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랑에 무너지고, 또 새로운 사랑에 몰입하며 살아간다. 흐릿해지기는 하더라도, 사랑은 매번 재채기처럼 갑자기 찾아오기도 하고 또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 진리다.
사랑을 끊임없이 한다는 건 변치 않는다고 외치면서도 왜인지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말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 말을 인정하면 내가 사랑했던 그 열정과 시간이 모두 가벼이 되고, 내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을 더 신뢰했다.
치열하게 사랑했다. 이성 간의 사랑에 있어서 치열이란 단어가 참 어색하지만, 서로라는 사람 자체를, 또 우리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정말 그 단어 그대로 치열했던 사랑이었다.
없는 살림이란 말이 와닿던 지난 시간 동안, 없는 살림을 모두 털어 서로에게 전부를 주면서 견뎌왔는데 더 이상 털 수 있는 '없는 살림'이 견디기 힘들어진 내가 먼저 그의 손을 놓았던 날이 찾아왔고 그렇게 헤어졌다.
그렇게 모든 걸 주었는데도 우리의 애절한 사랑은 내내 미안했고 서글펐고 애틋했다.
그 언제라도 우리의 없는 살림에 빛 한 줄기가 비추면 꼭 다시 만나자는 말을 보내던 서로였고, 보고 싶다고 울면서 전화해도 우는 목소리라 맘이 안 좋지만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까 좋다고 말하는 우리였다.
그래서 나는 단번에 이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기 어려울 거라 확신했다.
처음으로 들은 '잘 지내'라는 말에 수없이 찾아왔던 이별의 위기에도, 이별 후에 서로가 없이는 잘 지내지 못할 거라는 걸 너무 잘 알던 우리가 남이 되었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내 치열했던 지난 사랑에게 '잘 지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무수히 도망치고 눈물로 날을 지새웠는데 막상 오늘은 '잘 지내'라는 마지막 인사가 그 걸음을 멈춰 세웠다.
언젠가 치열했던 사랑을 다시 마주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언젠가 '잘 지내'라는 마지막 말이 무색하게 우리의 흔적을 다시 찾자고, 다시 나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고 할 수도 있다.
혹여 그런 날이 오더라도, 당신 덕에 사랑을 배웠다고, 당신 덕에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그래서 당신 덕에 많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이제 진짜 당신 없이 먼저 괜찮아졌다는 것이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미안함이라고, 날 사랑으로 지키려는 이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사랑이 다시 날 떠나가더라도 더 이상 스스로를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 이제 당신과 나, 모두 서로에게 그만 미안해하기를 바라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