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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정 Jul 15. 2023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자기부정이 그리 슬프지 않다는 걸 느낀 날의 일기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랑에 무너지고, 또 새로운 사랑에 몰입하며 살아간다. 흐릿해지기는 하더라도, 사랑은 매번 재채기처럼 갑자기 찾아오기도 하고 또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 진리다.


사랑을 끊임없이 한다는 건 변치 않는다고 외치면서도 왜인지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말을 인정하싫었다. 그 말을 인정하면 내가 사랑했던 그 열정과 시간이 모두 가벼이 되, 내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을 더 신뢰했다.



치열하게 사랑했다. 이성 간의 사랑에 있어서 치열이란 단어가 참 어색하지만, 서로라는 사람 자체를, 또 우리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정말 그 단어 그대로 치열했던 사랑이었다.


없는 살림이란 말이 와닿던 지난 시간 동안, 없는 살림을 모두 털어 서로에게 전부를 주면서 견뎌왔는데 더 이상 털 수 있는 '없는 살림'이 견디기 힘들어진 내가 먼저 그의 손을 놓았던 날이 찾아왔고 그렇게 헤어졌다.


그렇게 모든 걸 주었는데도 우리의 애절한 사랑은 내내 미안했고 서글펐고 애틋했다.

그 언제라도 우리의 없는 살림에 빛 한 줄기가 비추면 꼭 다시 만나자는 말을 보내던 서로였고, 보고 싶다고 울면서 전화해도 우는 목소리라 맘이 안 좋지만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까 좋다고 말하는 우리였다.

그래서 나는 단번에 이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기 어려울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해결해 줄 시간이 채 가지 않았음에도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는 날이 내 평생에, 아니 적어도 이 사랑에는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정말 재채기처럼 갑자기 찾아왔다.



처음으로 들은 '잘 지내'라는 말과 오랜만에 들은 '너를 더 기쁘게 해주고 싶어'라는 말을 동시에 들은 시간에 나는 마음이 아프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


수없이 찾아왔던 이별의 위기에도, 이별 후에도 잘 지내라는 말을 하지 않던 우리는 남이 되었고 불과 며칠 전까지 남이었던 사람이 내게 기쁨이 되고 싶다며 우리가 되었다.


나 자신이 나보다도 사랑했던 사람은 내게 '잘 지내'를 고했고, 나의 사랑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했던 사람은 내게 사랑을 고백했다.


내 치열했던 지난 사랑에게 '잘 지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무수히 도망치고 눈물로 날을 지새웠는데 막상 오늘은 '잘 지내'라는 마지막 인사보다 나의 기쁨이 되고 싶어 하는 그에게 행복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언젠가 치열했던 사랑을 다시 마주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언젠가 '잘 지내'라는 마지막 말이 무색하게 우리의 흔적을 다시 찾자고, 다시 나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고 할 수도 있다.


혹여 그런 날이 오더라도, 당신 덕에 사랑을 배웠다고, 당신 덕에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그래서 당신 덕에 많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해주며 지금 잡은 이 손을 보여주고 싶어졌다.


이제 진짜 당신 없이 먼저 행복해졌다는 것이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미안함이라고, 날 사랑으로 지키려는 이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사랑이 다시 날 떠나가더라도 더 이상 스스로를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 이제 당신과 나, 모두 서로에게 그만 미안해하기를 바라는 밤이다.


이제, 정말 나의 삶이 '잘 지내'길.



예전 그 마음 사라졌단 게

예전 뜨겁던 약속 버린 게 무색해진대도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만 미안해하자


다 지난 일인데

누가 누굴 아프게 했건

가끔 속절없이 날 울린

그 노래로 남은 너


잠시인 걸 믿었어

잠 못 이뤄 뒤척일 때도

어느덧 내 손을 잡아 준

좋은 사람 생기더라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이대로 우리는 좋아 보여

후회는 없는 걸

그 웃음을 믿어봐


이대로 좋아 보여

이대로 흘러가

니가 알던 나는

이젠 나도 몰라


-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 덧붙여

내 손을 잡고 힘을 내고 있는 이에게 이 글이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글은 나의 기쁨이 된 그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들려주고 싶은 세레나데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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