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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정 9시간전

오빠에게

헤어진 지 1년여 만에 온 연락

오빠, 나는 정말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잖아.

근데 생각해 보면, 울 수 있다는 것만큼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게 없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인지 우리가 헤어지던 날, 우리는 서로를 품에 안고 내내 울었었잖아. 어쩌면 우리의 시간 중에 그때가 가장 사랑하고 살아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어.

 

오빠, 나의 슬픔이 되어줘서 고마워.

여전히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가장 사랑했던 구석이 되어줘서 고마워. 어디에 있던 오빠를 떠올리면 눈물이 흐를 수 있어서, 그게 이상하게 고마워.


오빠는 나의 습관이었어.

세탁기 하나 돌릴지 모르던 내가 여전히 수건과 양말을 같이 돌리는 사람이 된 것, 설거지를 하고 나서 한번 더 그릇을 만져보는 사람이 된 것, 케이블 타이가 무슨 말인지도 몰랐던 내가 모든 전선을 케이블 타이로 묶어내는 사람이 된 것.


오빠는 나의 성격이었어.

사람을 좋아하던 내가 내향적으로 변한 것, 무턱대고 사람을 믿던 내가 이젠 아무도 믿지 않는 사람이 된 것, 항상 다정한 문장을 선택하던 내가 이제는 너무 쉽게 차가운 온도를 전하는 것, 괜찮지 않을 때 가장 밝게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된 것.


오빠는 내가 어떤 부분이 약한지 누구보다 잘 알아서 여전히 나를 흔들 수 있는 사람이란 거 잘 알고 있잖아. 찾아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내게 흔들리는 날을 마주하게 해 줘서 고마워.


헤어지던 날,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해?

나는 평생 오빠를 사랑할 거라고. 세상을 살다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을 때, 나 자신보다 오빠를 더 사랑하는 내가 있다는 걸 기억하고 행복하라고 했던 말 말이야. 그 어느 때보다 흔들리는 오늘, 이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전하고 싶어.


지나고 보니 알겠더라.

눈물이 살아있음에 증거인 것처럼 뚝뚝 흘려 만큼 사랑이라는 걸, 그리고 사랑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되돌아올 필요는 없다는 걸.


그러니까 돌아오지 말고 그냥 이렇게 사랑만 하자. 각자의 세상에서 이렇게 생각만 해도 애틋하게 사랑만 하자. 여전히 나의 삶을 꾸려줘서, 나의 영감이 되어줘서 고마워.


오빠를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사랑해서 너무 아픈 사람으로부터. 늦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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