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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정 Jan 21. 2022

괴로워하고 애를 태우다

감귤청을 만들다

오늘 했던 고민은 무엇인고. 하루를 돌아보니 혼자 사는 여성에게 처치 곤란인 귤 선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머리를 싸매고 있었던 것. 그 고민은 청을 만들면 되겠다고 금방 결론이 났지만, 막상 청을 담을 병을 사러 가니 이번엔 병을 얼마나 사야 하는지에 가로막혀 한참을 서 있다가 10병이나 사서 나왔던 일이 있었다.


‘오피스텔의 감귤을 발견하였습니다. 설탕 1kg를 이용하여 감귤청을 10병 만드십시오.’

게임 속 미션을 받은 것처럼 머리엔 느낌표(!) 온종일 귤만 깠다. 그리고 설탕을 탈탈 털어 10병을 다 채웠을 때 너무 뿌듯했지만, 이내 이걸 누구에게 나눠줘야 할까에 대하여 봉착하고 말았다.


‘아, 선물하려면 맛은 괜찮아야 하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금방 만든 감귤청을 사이다에 넣어 잘 섞어서 마셔보았다. 이게 웬걸, 사이다 맛만 났다. 이럴 수가 있는가. 설탕도 더 넣어보고, 친구에게도 물어봤지만 돌고 돌아 인터넷에선 상온에서 설탕이 전부 녹아야 맛이 나기 때문에 2-3일 정도의 숙성 기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일단 녹이고 보자. 날이 추워서 이게 상온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싶지만 일단 설탕을 녹여야 비로소 청이 되니까. 누구에게 선물할 것인가와 함께 청에 대한 고민은 3일 뒤로 우선 미뤄두었다.


하루 내내 한 거라곤 청을 만든 것밖에 없고 아직 누구에게 선물할지도 모르지만, 너무나 기뻐하며 진심을 다해 만들었다. 그 누구도 오늘의 감귤청을 향한 나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물론 손가락이 노래질 때까지, 온 집안이 귤 밭에 떨어진 것처럼 아무리 환기를 시켜도 귤 냄새가 빠지지 않는 그 순간을 아는 사람은 함께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고민이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았다. 쓸 고에, 답답할 민.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사전 속 고민의 뜻과 동일한 마음이 드는 일들이 내게 얼마나 있었는가를 되짚어 보게 되었다. 정확한 건 고민의 연속이라 말했던 감귤청 만드는 일은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있어 다양한 형태와 각각 다른 무게를 짊어진 고민이 있겠지만, 사전 속 뜻을 지닌 고민은 얼마나 있을까? 친구들과의 대화 속,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 속 ‘나 고민이 있는데’는 그렇게 무겁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군가는 ‘당신이 뭘 안다고 얘기해! 나는 괴롭고 애를 태웠다고!’라고, 너무 개인적인 경험으로 타인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겠냐는 질타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감귤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믹서기에 살짝 가는 게 좋을지, 일자로 바르게 써는 것이 예쁠지… 단지 이런 생각들만 했으면 좋겠다.


고민의 사전적 유의어로는 고뇌, 괴로움 등이 나온다. 괴롭고 애태우고 번뇌하고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고 고통스럽고… 삶을 살아가며 다양한 일이 지나가고 또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괴롭고 애태우는, 그 정도는 하지 않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냥 간단하게 생각, 생각 정도가 어떨까. 아놔 머리에 생각이 많아. 그리 괴롭거나 애가 타는 정도는 아니지만 뭐가 나을지에 대한 살짝 그 정도?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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