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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정 Jan 25. 2022

누워봐야 아는 것

사바아사나:송장 자세

뻣뻣함을 사람으로 표현한다면 아마 키는 168cm에, 몸무게는 60kg 정도. 어깨에 닿는 단발머리 스타일의 여자일 것이다. 바로 나라는 소리다.

더군다나 뻣뻣함 씨는 극도로 충동적인 성격이라서, 특히나 귀여운 것을 참지 못하고 홀딱 반해버린다. 이 이야기들을 하는 이유는, 귀여운 곰인형이 요가를 하는 모습에 반해 스스로의 뻣뻣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요가를 등록해버렸기 때문이다.


뻣뻣함은 어린 시절,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거꾸로 떨어진 이후로부터 심해졌다. 그 이후로, 나는 단 한차례도 두 다리를 쫙 피고 앉은 상태에서 발을 잡는 것에 성공한 적이 없다. 몇 번의 체력장에서도 딱 유연성 부문만! 전교 꼴찌를 거머쥐곤 했다. 우스운 핑계이긴 하지만 20대 초반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공무원 시험도, 유연성이 좋지 못해 시작도 해보지 않았다.


유연함이 필요 없다 느껴지는 운동들을 주로 해왔다. 헬스는 물론이요, 크로스핏, 주짓수, 태권도 등 힘을 쓰는 것에 미쳐있었다. 물론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친구를 따라 시작해 본 필라테스는 하필, 내 기구만 고장이 나 큰 사고로 이어질뻔한 트라우마를 안겨주었고, 요가는 명상 시간에 잡생각이 끝나지 않아서 포기해버렸다. 그 후로, 발레도 해보았지만 생각보다 온몸이 아팠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웃겨서 그만둬 버렸다.

그런 내가, 요가라니! 그것도 광고로 뜬 곰인형 사진에 생각도 안 하고 카드부터 내밀어 버렸다. 물론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냥' 요가가 아니라 '월(Wall) 요가'로 벽에 달린 벨트를 이용하여 동작을 이어나가는 요가여서 이전의 기억보다는 수월하기는 했다.

요가 용어가 어려워 무슨 이름을 가진 동작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벽에 거꾸로 매달리는 행잉 자세를 할 때는 마치 처음 패러글라이딩을 했던 기분이 났다. 못할 줄 알았고, 두려웠지만 땅에서 발을 띄고 패러글라이더에 몸을 온전히 맡겼을 때. 발아래의 세상을 전부 호령한 듯하였고,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던 그 기분. 벽에 매달린 벨트에 내 천골을 걸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때도 그 기분이 느껴졌다. 마치, 곧 유연함으로 세계를 제패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

보통 요가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바아사나 자세가 가장 편하다.'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듣는다. 사바아사나 자세는 다른 말로 송장 자세. 가만히 누워있는 자세다. 난도가 있는 동작을 끝낸 후, 몸의 온구석이 지면에 닿게 한 후 몸의 힘을 빼고 숨을 고르며 가만히 눕는 요가 자세이다.

나 또한 이 사바아사나 자세가 가장 마음에 든다. 거창한 이유를 대고 싶지만 그냥 편해서이다. 오늘도 요가 수업의 마지막을 몸의 긴장을 풀고 가만히 누운 사바아사나 자세로 끝마쳤다. 신체를 유심히 들여다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몸의 흐름을 가만히 생각하는데, 한쪽 엉덩이가 다른 쪽에 비해 매트에 덜 닿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후, 어깨의 한쪽도 그랬고 종아리 한쪽도 그랬다. 가만히 누워보니 내 몸이 틀어져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의식적으로 틀어진 몸을 매트 가까이로 눌러내 보았다. 처음보다 더 균형이 맞아졌다.

삶의 시간을 흘러 보낼 때에도, 어딘가 틀어져 있는 부분들을 맞이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잘못 꿰어진 셔츠의 단추처럼 틀어지기 시작한 부분을 금방 찾아내 바꾸면 좋으련만, 삶은 틀어진 일의 원인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사바아사나 자세를 하며 생각했다. 그러면 누워보자고. 몸의 힘을 쭉 빼고 가만히 누워서 틀어진 부분을 찾아보자고. 이 자세의 관건은 몸의 힘을 빼는 것이다. 생각의 힘도, 몸의 힘도. 명상을 위해 생각을 억지로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찮게 드는 생각들을 그저 내버려 두는 것. 그것이 바로 요가 수업을 통해 체득한 생각의 힘을 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 몸 한쪽이 틀어진 걸 발견한 것처럼 마음속 틀어진 일도 찾아낼 수 있다. 혹여 원인은 찾지 못하더라도, 어느 부분에 더 힘을 주고 어느 부분을 더 눌러내야 하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것이 힘을 뺐을 때 더 강력하게 부여되는 힘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든다면, 지금 잠깐 누워보자. 온몸의 힘을 빼고 어깨를 뒤로 돌려 아래로 내려놓으며, 양쪽 엉덩이를 지그시 바닥에 눌러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만히 누워보자. 틀어진 것을 한 번에 돌려낼 재간은 없지만, 틀어진 것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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