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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산 Jan 18. 2019

숨 소리, 웃음 소리

윤이의 호흡은 매일 조금씩 얕아졌다.

마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녹음이 짙어갈 무렵 담당 주치의는 윤이의 안정과 자가 호흡을 돕기 위한 입원오더를 내렸다. 신경과 근육의 마비를 멈추거나 되돌릴 수는 없었다. 단지 낮과 밤, 활동과 수면 중의 호흡 체크로 부족한 산소를 엠부백을 통해 스스로 충당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는 의도였다.    


윤이의 출생 이후 몇 달에 한 번씩 수술을 위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재활과 정기 진료를 위해 수시로 드나들며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병원은 한 단계씩 정상을 향해 나아가던 날갯짓에서 이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힘겨운 몸부림이 되었다.

좀 더 나은 몸으로 삶의 질을 높이려는 진료가 어떻게든 살아 내기 위해 숨쉬기를 배워야하는 생존 치료로 바뀐 것이었다.


지금까지 우리의 노력과 열망과 의지와는 상관없는 정반대의 내리막 길.

그간 들여 온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해서 하루도 견딜 수가 없었다.

원망과 분노 바람과 욕심 모두를 다 내려놓아야 물 한 대접의 평정심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낼 수 있었다.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매진 해 왔던 모든 일에 더 이상 내 의지를 주장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 온 것 조차 내 뜻과는 상관없었던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사람의 생각과 하늘의 뜻은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오랜만의 입원은 짧은 고생 뒤에 찾아 올 기쁨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아무도 모를 잿빛 착잡함과 찡한 먹먹함을 안고 준비했다.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던 예전에는 윤이가 어렸고 고생 뒤에 찾아 올 보상으로 잠시의 힘겨움을 감당했다면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는 윤이를 부축하기에 내 힘이 부쳤고 보상이라야 생존을 위한 숨쉬기나 더욱 증세가 악화될 암울한 내일을 고지 받는 것이라 가방을 꾸릴 때부터 기운이 빠졌다.   

  

넓은 병실은 중증 루게릭 환자들에게 필요한 많은 기계들을 위한 여분의 공간이었고 곁의 환자들은 머지않은 윤이의 미래를 추이별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은 보호자의 도움 없이 혼자 걸을 수 있지만 일상생활은 혼자하기 어려운상반신 마비의 아저씨,

호흡, 섭식, 배설 모두를 기계에 의지한 채 누워 보호자에게 생존의 모두를 의지한 채 최소한의 의사표현을 눈 깜빡임으로만 하는 30세 청년,

몸에 부착된 여러 기계의 전기 코드가 하나만 빠져도 단 몇 분후의 생존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혼수상태의 50대 가장.    


오랜 투병으로도 기력을 회복할 수 없는 환자들의 하루하루는 보호자의 전적인 도움에 의지하여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었고

간병이 일상이 된 가족과 보호자의 피로는 낙담과 절망에서 묻어나는 무표정과 

생기 없는 칙칙한 아우라로 오롯이 전해졌다.

첨단 의술이 유예하는 죽음, 오로지 ‘살아있음’에만 안도해야하는 가족과 보호자의 대가는 실로 혹독해 보였다.    

윤이의 가까운 미래 일 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는 갖가지 병실의 풍경은 그러지 않아도 착잡한 마음을 더 심난하게 만들었다.


생명을 연장하는 첨단 장치와 기계들이 누구에게, 왜 필요한 것인지 되물으며 사람다운 삶과 죽음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사람다운 삶과 죽음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병이 환자와 가족에게 주는 의미와 메시지는 무엇인지

우리는 가족의 병과 간병을 통해 무엇을 바라고 소망해야 하는지

그리고 죽음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곁의 환자들과 자신을 조금도 연결 짓지 않으며 집 아닌 병원의 또 다른 환경에서 가족들의 전적인 관심과 사랑과 보호를 받는 걸 즐거워하는 무한 긍정의 아이콘 윤이를 보며 자기의 호흡으로 먹고 마시고 웃고 소통할 수 있는 한 내일의 두려움을 잊고 오늘을 감사하며 끝까지 미래를 소망하리라 다짐했다.    

내 의지나 첨단 의술조차 기적을 장담할 수 없는 연장된 생명에 매달려 몸부림을 치고 사느니

하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그건 단지 죽고 사는 문제만이 아니었다.

삶을 바라보는 근본적 시각과 가치관에 관한 우리 모두의 과제였다.    


사람다운 삶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하루하루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주신 생기와 소망으로 날마다 채워가는 것이니 매 순간 병을 담보로 나와 우리를 유혹하고 흔드는 그림자 같은 어두움을 종이호랑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흔들리지 않는 엄마의 모습이야말로 윤이가 병을 견뎌내는 가장 큰 힘이 된다는 생각에 윤이가 가장 건강한 바로 ‘오늘 이 순간’ 을 긍정과 웃음으로 지냈다.

운명을 한탄하고 병을 탓하기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1분 1초를 아껴 긍정과 소망과 웃음의 대화를 이어가는 우리 사이에 어떤 어두움도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세상이 우리에게 선언한 병과 죽음, 두려움과 고통의 어두운 아우라는 우리 곁에 얼씬도 못했다.

죽음을 직시하고 보니 다가올 긴 이별이 어쩌면 껍데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영생의 소망과 무한 확장된 크고 웅장한 스케일의 삶 그리고 하늘이 주신 존엄과 자유가 벅찬 현실처럼 마음에 와 닿았다. 


휠체어에 앉아 세상 행복한 미소로 엄마와 우스개소리를 주고받으며 깔깔 대는 모녀의 모습에서 누구도 윤이가 선천적 사지 장애로 이제껏 어려움을 겪다 온 몸의 신경과 근육이 점차 마비되는 ‘루게릭’ 으로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몸이라는 것과 이제는 호흡까지 가빠져 보호자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눈치 채지는 못했다.

병원 벤치의 수심 가득한 노인환자 가족은 세상에 웃을 일 밖에 없어보이는 우리를 심지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윤이에게 아가씨 얼굴이 참 밝고 환해서 빨리 회복하겠다는 덕담까지 해 주었다. 


윤이의 웃음이 높아질수록 호흡은 날마다 조금씩 짧고 옅어져 긴 이별의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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