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워드를 치다가 컴퓨터가 글자를 인식하지 못 했을 때 그림도 글자도 아닌 이상한 모양들이 나타나곤 했다. 뜬금없이 나타난 그 글자는 어색한 입모양과 낼 수 없는 발음으로 장난스런 웃음을 유발했는데 그런 형태의 글자가 어떻게 생겨나 어떨 때 사용되는지 몰랐으나 하여간 인식의 오류를 보여주는 표시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런데 후일 그 오류의 기호 중 하나가 바로 ‘나’를 지칭하는 것이 될 줄이야...
윤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을 때 나는 온 마음으로 아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애정보다는 모성의 책임감으로 양육과 치료에 올인했다.
건강하지 못한 아이를 안고 병원 문이 닿도록 드나들며 최선을 다해 정상을 되찾아주려 했던 노력의 고통보다 아이가 커가면서 당하는 무시와 따돌림이 내게 두 배의 아픔과 상처가 되었다.
수차례의 첨단 의학적 수술과 치료로 거둔 나름의 결실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누가 봐도 비정상의 몸을 가지고 있어 아물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었다.
어쩌면 윤이와의 갈등은 처음부터 내 마음 속에서 싹텄는지 모른다.
사람이 살면서 흔히 만나고 경험하는 범주를 넘어선 전쟁이나 사고, 성폭력 같은 극단의 사건들은 겪어보지 않으면 그 분노와 상처와 고통을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윤이의 장애로 겪는 내 고통과
뜻대로 되지 않는 사지로 일상이 어려운 윤이의 상처를
낱낱이 모르는 것처럼.
나는 혼자 있어도, 아이와 둘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과 여럿이 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았고 그 세세하고 디테일한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들었다.
학교에서 이미 아웃 사이더가 된 아이와 나는 핑크빛 미래가 펼쳐진 그들만의 리그에 투명인간이 되어 누구와도 소통의 대상도 될 수 없었다.
돌아보니 나는 충분한 위로나 공감을 받지 못한 채 진액을 다 짜가며 윤이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오랜 고민과 기도 끝에 낳은 6년 터울의 건강한 둘째가 윤이의 장애로 인해 찢기고 헤진 마음을 위로 해 주었다.
어릴 때는 윤이의 건강하지 않은 몸 때문에 내 몸과 마음이 바빴다면 자라면서 나와 대척점에 있는 그의 개성까지 상대해야만 해서 겹으로 고단했다.
내가 그로 인해 힘든 만큼 그도 나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윤이를 향한 한 마디에도 쌓이고 쌓인 분노가 녹아 날카로웠고 그걸 모를 리 없는 윤이는 쇠 창검 같은 엄마에게 서서히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궜다.
햇살 같은 미소로 엄마를 바라보고 의지하던 아이는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한테만 마음을 열었고 어두운 표정과 퉁명스런 말투는 오로지 엄마를 향한 것이었다.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우연한 계기에 보게 된 윤이의 폰에 ‘엄마’라고 찍힌 번호는 선생님 것이었고 내 번호는 ‘꺇’에 저장되어 있었다.
눈이 의심스러웠지만 말도 아니고 소리도 아닌 그 글자에는 엄마에 대한 반항심과 미움 그리고 둘 사이의 갈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런 모녀 지간은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글자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때 나타났던 오류의 기호.
그러니까 나는 윤이에게 받아들일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비정상, 오류투성이의 허울뿐인 엄마였던 셈이다.
그때부터 화두가 된 ‘꺇’은, 내가 다시 윤이의 폰에 ‘엄마’로 저장되고 윤이와 진심어린 눈빛과 사랑의 마음을 주고받기까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일그러진 자아를 보듬어 일으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 또한 살면서 충분히 받지 못한 엄마의 사랑과 꼭 했어야 할 진정한 소통과 화해를 덮고 지나왔던 마음의 상처가 덧나고 곪아 치유가 필요한 상태였다.
게다가 장애는 비정상이라는 편견 때문에 외형적 ‘정상’에 집착하여 윤이의 몸을 고치는 일에만 몰두하느라 나와 윤이의 마음과 영혼을 잊고 있었다.
신체적 장애를 가진 윤이의 온전하고 성숙한 마음까지 모두 비정상으로 치부해 의심하고 간섭하고 훈계하고 비난하였으니 모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몸을 정상으로 고치느라 여유 없고 바빠 망가진 마음으로 윤이를 살피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그쳐야 할 때가 되었다.
과거에 얽매어 자책과 한탄으로 시간을 허비하기 보다는 깨닫게 된 문제의 근원에서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될 일이었다.
또 사람이 풀 수 없는 일은 기도와 간구로 의탁하고 위로 받으면서 하늘이 축복해 주신 윤이의 온 존재를 긍정하고 사랑하기로 했다.
누가 뭐래도 무조건 자신을 지지하고 사랑해 줄 단 한 사람, 윤이에게 나는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먼저 바뀌어야 할 쪽은 윤이가 아니라 엄마인 나였고 온기와 사랑도 내가 먼저 주어야 했다.
감성과 직감의 본체 윤이의 해맑은 웃음과 용서로 다시 시작된 우리의 사랑은 하늘이 내려주신 귀한 선물이었다.
잊고 살았던 내 안의 상처와 해결하지 못한 사랑의 고리 그리고 장애의 편견에 대한 뒤늦은 자각으로 윤이에 대한 내 마음과 태도가 서서히 바뀌어 우리는 조금씩 모녀지간의 정상 궤도에 다가서게 되었다.
불신의 ‘꺇’이 감동의 ‘꺅’ 되어
재윤이와 나눴던 짧고도 강렬했던 사랑의 이야기는
말로는 하기 힘든 슬픔의 자리에
달콤한 추억, 빛의 멜로디로 남아
오늘도 촉촉하게 가슴에서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