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endix 펫샵에서 만난 고양이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 집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고, 부푼 꿈을 안고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영원할 것 같던 20대에 나의 두 번째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 자취를 할 때는 혼자 서른 평짜리 아파트에 살았다. 부모님이 마련해준 집이었고, 학교와 다소 거리는 있었지만 통학버스를 활용해서 통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부모님도 가끔 왕래를 하셨고, 학교 기숙사에 있는 오빠도 간간히 들리곤 했다. 온 가족이 들락날락하다 보니 큰 아파트에 혼자 살게 된 것이다. 다만, 아무리 가족들이 다녀간다고 해도 내가 혼자 지내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나는 혼자인 것이 때때로 외롭고, 때때로 무서웠다. 그래서 나와 함께할 고양이를 데려오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당시엔 가정 분양이나 캐터리가 지금처럼 활성화되지도 않았고, 그런 곳은 비용이 비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펫샵에 가서 고양이를 사 오기로 했다. 딴에는 열심히 찾는다고 찾아서 가깝고 저렴한 펫샵에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은 돈으로 고양이를 분양받을 수 있었다.
내가 찾은 펫샵은 어느 소도시의 펫샵이 즐비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상점들의 유리창 너머로 어린 강아지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찾아간 펫샵의 유리벽 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고양이들을 봤다. 어미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들. 그중 한 마리를 골랐고, 그렇게 작은 아기 고양이는 작은 종이박스에 담아져 우리 집으로 왔다.
얌전하게 생긴 샴고양이로, 초콜릿색 코트를 입은 아이의 이름은 쇼콜라. 줄여서 쇼코라고 불렀다.
그 무렵의 아기 고양이들이 다 그렇겠지만 2개월가량의 쇼코는 아주 어리고 조그만 고양이였다. 어린 고양이답게 눈곱에 코딱지를 얼굴에 주렁주렁 달고 있었고, 그래서 집에 데려와 정성스레 얼굴을 닦아주며 잘 지내보자고 인사했다. 그런데 하룻밤, 이틀 밤이 지나 사흘을 꼬박 지나도록 부지런히 얼굴을 닦아줘도 쇼코는 눈곱 쟁이였다. 심지어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인 듯 하얀 눈곱이 꼈습니다. 그래서 나는 쇼코를 분양받은 그 펫샵에 고양이가 아픈 것 같다고 전화를 했다. 펫샵에서는 이런저런 아이의 증상을 물어보더니 다시 데려오라고 했고, 그래서 나는 다시 쇼코와 함께 펫샵을 찾았다.
다시 방문한 그 펫샵에는 아직 분양이 되지 않았는지 쇼윈도 너머로 여전히 어린 샴고양이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마 쇼코와 한 배에서 태어난 아이들 같았다. 어미 고양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아기 고양이들만 케이지 안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아직 저 아이들은 분양이 안됐구나.'
그냥 그렇게 무심코 생각을 했다.
그 펫샵 직원은 쇼코를 한번 쓱 훑어보더니 내게 말했다.
"다른 고양이로 교환해드릴게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방금 뭐라고 들은 거지? "교환?". 상품도 아닌 살아있는 생명인데 교환이라는 단어가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물론, 교환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교환"된 고양이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다. 나와 사흘 밤을 함께한 이 상품성이 없어진 아픈 고양이는 어디로 가게 될지 생각하면 너무나 뻔한 일이었기에 나는 그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아이를 계속 키울 거예요. 혹시 아픈 거라면 병원비를 지원해주세요."
그는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나에게 다시 고양이를 받아서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서랍에서 안연고를 하나 꺼내 줬다. 이것을 며칠간 넣어보고 그래도 이상이 있으면 다시 연락 달라고 했다. 나는 놀란 가슴과 쇼코와 안연고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펑펑 울었다. 만약 그곳에서 다른 고양이로 교환했다면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섭고 슬픈 감정에 쇼코를 앞에 두고 울었다.
안연고가 효과가 있었는지, 쇼코는 건강하고 무탈하게 회복했다. 그래서 그 펫샵에 다시 연락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어쩌면 낯선 우리 집으로 오면서 발생한 잠깐의 병치레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 일 이후로 펫샵에서 동물을 사는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분명 교환과 환불되는 아이들이 있을 텐데 그 아이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그들이 그런 말을 한 것은 내가 그것을 원하고 바랐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누군가는 아픈 아이를 교환하고 싶어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마음이 변해서 환불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펫샵에서도 의례 그러하듯 그런 식으로 나에게 대처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그들은 어쩌면 정말 물건을 파는 것과 동물을 파는 것이 진배없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상행위 안에 동물이 물건과 같이 취급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 생각은 10여 년이 지난 아직도 의문이 든다.
쇼코는 꽤 얌전한 고양이였다. 처음엔 우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해서 펫숍에서 일부러 성대를 훼손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예방접종을 위해 찾은 동물병원에서야 겨우 가냘픈 소리로 "야옹"하고 울었다. 수의사 선생님이 웃으며 "너 이래 가지고 고양이 맞니?"하고 얘기했다. 그날 이후로도 쇼코는 그다지 울지 않았다.
등하교 거리를 줄이기 위해 좀 더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집을 옮기게 되었고, 룸메이트가 생겼다. 룸메이트는 흔쾌히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을 수락해주었다. 룸메이트와 나와 쇼코, 셋이서 오래오래 행복할 줄 알았다. 아니 적어도 쇼코와는 오래오래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학이 찾아왔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우리의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평소 기관지가 약한 엄마가 쇼코의 털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것이다. 고양이 평균 수명은 15년. 지금까지 보다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길 텐데 엄마와 쇼코는 함께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급한 대로 방학기간 고양이를 맡아줄 친구를 찾아 부탁했다. 사료와 모래 등 필요한 걸 지원할 테니 맡아달라고.
시간이 흘러 나는 졸업의 시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까지 집에서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다.
그것은 나에게 더 이상 쇼코와 함께 지낼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계속 자취생활을 이어나갈 수도, 쇼코와 가족이 함께 살 수도 없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다. 쵸비때도 그랬지만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고 키울 수 없다는 것이 나에게 너무 큰 죄책감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부모님과 큰 소리로 싸우기도 했다.
"쵸비는 괜찮았는데 왜 쇼코는 안돼."
결국 경제적 자립을 하지 못한, 그리고 할 수도 없었던 나는 고양이를 맡아줄 사람을 다시 찾아야 했다. 이제는 잠깐이 아니라 영원히 맡겨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학교 선배 언니가 쇼코를 맡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착한 내 고양이는 언니와도 잘 지냈다. 나는 그렇게 내 두 번째 고양이와 다시 이별을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