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Spotify) 가 2021. 2.2 부터 한국에서도 서비스를 개시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이자, 음악 추천으로 유명한 서비스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픈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사용해 보았습니다.
스포티파이 네이버 검색 광고
처음 회원가입을 하면 일주일간 무료로 사용해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요금 제도나 기능에 대한 소개보다는 제가 느낀 스포티파이 만의 '서비스 경험'과 '사용성'을 기준으로 작성해보려 합니다.
나를 위한 음악을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음악 감상의 경험
우선 저는 뚜렷한 음악 취향이 있다거나, 출퇴근길은 꼭 음악과 함께 할 정도로 음악을 자주 듣는 사람은 아닙니다.
TV 나 길거리에서, 또는 실시간차트에 올라와 있는 노래중에, 우연히 좋은 노래를 들으면 멜론에서 해당 노래만 검색해서 며칠 듣곤하는 스타일이에요. 가끔 정말 듣고 싶은 노래가 생각나면 검색해서 듣기도 하고요.
실시간차트 위주의 멜론 홈메뉴 구성(여기저기서 듣다보니 금새 지겨워진다)
그러다보니 유튜브 보기엔 좀 피곤하고 노래를 듣고는 싶은데, 실시간차트나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노래는 지겹고.. 어떤 노래를 들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그런 상황을 자주 맞닥뜨리곤 합니다.
멜론 접속시 가장 눈에 띄는 실시간 차트도, 신규 음반이라고 상단에 소개되는 것들도, 제 취향에 맞춰서 나온건 아니다보니 멜론을 이용할 때의 경험은 '수동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느낌이 들었었어요. 뭐랄까, 다양한 음반이 있는 큰 가게에서 사고 싶은 음악만 찾아서 사고 나오는 느낌이랄까요? 딱히 뭘 사야될지 모르면 그냥 나오는거고요.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선택하면, 나에게 맞는 추천이 시작된다
하지만 스포티파이의 추천 서비스는 '나를 위한' 음악을 찾아 나서는 듯한, '적극적인 음악 감상' 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처음 서비스에 가입하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선택하게 하는데, 그걸 바탕으로 유저가 좋아할만한 노래를 추천해줍니다.
'오늘의 추천' 이라고 해서 노래 한곡씩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나를 위한 '플레이리스트' 를 직접 만들어서 추천해주기도 합니다. 앞서 좋아한다고 선택했던 아티스트의 팬이라면 '꼭 들어봐야할 노래' 와 같이 여러 노래들을 모아서 보여주기도 하고요.
추천받은 SOLE 라는 가수의 노래가 딱 내 취향이여서 놀랐다
중요한건 추천받은 노래가 정말 내 취향에 맞는 것이여야 할텐데요, 생각보다 추천받은 노래가 좋은 것이 많았습니다. 특히 저는 'SOLE'라는 아티스트를 추천받아 노래를 들어봤는데, 추천받은 노래들이 모두 너무 좋더라고요.
유튜브 알고리즘과 비슷하게, 내가 들었던 음악과 유사한 음악들을 계속해서 추천해 주니까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계속 찾아나설 수도 있었고요.
바로 이 경험이 기존의 음원 서비스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면서, 스포티파이 서비스의 '아하 모먼트'(A-ha Moment, 제품의 가치를 느끼는 첫 순간)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내 취향에 딱 맞는 노래를 추천받고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해 낸 것 같은 기분! 실시간 차트 위주의 수동적인 음악감상을 했던 기존에는 느껴볼 수 없는 재미였습니다.
관심있는 아티스트가 생겼을 때, 이제는 스포티파이에서 검색해서 해당 아티스트의 노래들을 추천받고, 유사한 음악들도 찾아나가는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 감상 방법이 생길것 같아요.
이점에서 스포티파이 서비스는 '자기 음악 취향을 잘 모르는 사람' 에게는 취향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고, '이미 뚜렷한 취향을 가진 유저' 에게는 해당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아티스트를 추천해주기 때문에,다양한 유저층을만족 시킬 수 있는 모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은 팬들의 커뮤니티와 같은 역할도 한다
또 한가지 특이한건, 멜론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댓글'과 '평점' 이 없다는 겁니다. 노래 들으러 갔다가 댓글부터 먼저 확인하는 경험을 많이 했던 탓인지,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니 아무 편견없이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서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하지만, 댓글 기능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감상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일종의 커뮤니티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좀 아쉬웠어요. 특히 아이돌 팬덤이 강력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런 커뮤니티 기능이 없다는 점은 큰 약점으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어떠한 상황에라도 음악과 함께, 음악과 유저의 연결을 지향
다양한 상황에 어울리는 음악을 추천해준다
스포티파이의 검색 메뉴는 독특합니다. 검색하기로 들어가면 가요/힙합/R&B 등 장르별 음악 뿐만이 아니라 운동/휴식/드라이빙/파티 등 다양한 상황별로 테마가 구성되어 있어요.
드라이빙 메뉴로 들어가보니, "이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는 시간을 즐겁게 보내세요" 라는 문구와 함께 추천곡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라도, 꼭 맞는 음악과 유저를 연결해 주겠다는 스포티파이의 지향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멜론(melon) 의 검색메뉴
멜론의 검색 메뉴도 스포티파이와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둘을 비교해보면 성격이 다르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멜론의 테마구분은 #이별, #슬픔, #잔잔한 등과 같이 '곡의 성격' 에 따라 구분을 해놓은 것이 많아요. "슬픈 노래를 듣고 싶다", "잔잔한 노래를 듣고 싶다" 라는 식으로 찾고 싶은 것이 분명할 때, 그런 노래를 잘 찾게 해주는게 멜론의 역할입니다.
반면에 스포티파이는, '다양한 상황' 에 어울리는 음악을 추천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어떤 노래를 듣고 싶다" 고 딱 정한건 아니지만, '지금 이 상황에 어울리는'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유용하겠죠. 유저입장에서도 접근하기에 더 쉬울거고요.
멜론은 내가 지금 듣고싶은 그 음악, 지금 인기 있는 음악을 빠르게 잘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지만, 보다다양한 음악과 유저를 연결하는 '음악 플랫폼' 으로서의 역할은 스포티파이쪽이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스포티파이의 사용성 측면에서 보면, 아직 불편한점이 많습니다. 우선 한국 노래인데도 제목이 영어로 되어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러다보니 확실히 알고있던 노래가 아니면 이게 원래 노래제목이 영어인지, 아니면 한글인데 영어로 표기가 되고 있는건지 구별할 수가 없어서 네이버에 한번 더 검색을 해봐야 했어요.
아이유의 '좋은 날' 검색결과비교. 오른쪽 스포티파이에서는 노래를 찾을수 없다(플레이리스트 이름이 '좋은날' 인것)
그리고 저작권 문제로 국내 음원을 구하지 못한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 들을 수 없는 노래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유의 노래들이나, 장범준 노래를 검색했을 때 국내에서는 큰 인기를 얻었던 곡들인데도 검색이 되지 않았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추천은 유저를 혼란스럽게 할 수도
추천을 해주는 것은 좋은데, 추천목록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나오다보니 유저 입장에서는 오히려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는 어찌됐든 유저를 고민에 빠지게 하는건 좋지 않은 서비스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추천들이 질서없이 나열되어 있다보니 혼란스럽다
예를 들어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 오늘의 추천 / 추천 방송국과 같은 '취향 기반 추천목록' 과 함께 인기가요&신곡/ 시대별 국내음악/ 집안에 틀어놓기 좋은 음악와 같은 '테마별 추천' 이 구분없이 한데 섞여 나오고 있습니다.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오늘의 추천, 추천방송국 모두 내 취향에 기반해 추천해주는 음악들인데 어떤걸 선택해서 들어야 하는걸까요? 헷갈리는 상태에서 이것저것 눌러보는 식으로 리스트를 보다보니, "제대로 고른것이 맞나?" 하는 불안한(?)상태에서 음악을 듣게 되었습니다. 서로 비슷한 추천목록들은 통합해서, 심플하고 명확하게 구분되는 카테고리별 추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냥 내 취향에 맞는 음악을 듣고싶은 상황'과, '특정 테마에 따른 음악을 듣고 싶은 상황' 은 완전히 다른 상황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성격의 추천들을 한데 모아놓을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런 구분없이 스크롤로만 풀어놓는 지금의 UX는 조금 무책임하다는 느낌도 들고요. 탭으로 구분한다던지해서 추천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게 해주면 어떨까 합니다. (예를들면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추천받기' / '테마별 추천받기' 등)
싸이월드 vs facebook 구도가 생각나는 이유
아직 사용성 측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은 스포티파이지만, 조금만 더 한국 상황에 맞게 최적화가 된다면 파괴력이 크게 있을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스포티파이를 보고 싸이월드가 생각난건 왜일까
저는 왠지 예전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의 상황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일촌의 미니홈피에만 놀러가서 서로 소통하던 국민 SNS 싸이월드였지만, 유저 모두를 연결하겠다는 페이스북의 엄청난 연결성과 개방성에 밀려났던 상황 말이죠. 싸이월드는 플랫폼이 되지 못했지만, 페이스북은 플랫폼이 되었죠.
과연 스포티파이가 국내 서비스들의 TOP100 위주음원 소비, 이미 잘 알고 있는 노래만 검색해서 찾아 듣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경험 위주' 에서 → 유저와 다양한 음악을 서로 연결해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경험' 으로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까요?
많은 음원의 확보, 한국어 최적화 등 스포티파이가 풀어가야할 숙제는 많지만, 확실한건 이전과는 다른 음악경험을 선사했다는 점인것 같습니다. 과연 글로벌 스포티파이가 한국 시장의 높은 벽을 넘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