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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 구두 Sep 05. 2018

지랄 총량의 법칩

         

 

  허태균 교수가 지은 『어쩌다 한국인』에는 지은이의 은사인 한성열 교수가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고 한 말을 언급한 부분이 나온다. 즉 인생에서 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랄’이라고 하는 것은 살면서 방황이나 일탈, 이해할 수 없는 행위로 주위 사람들을 걱정시키게 하는 일련의 행동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어서  허태균 교수는 인생에서 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 어차피 해야 하는 것이라면 청소년 때 하는 게 낫다고 한 스승의 이야기도 더불어 언급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기성 세대들이 반항이나 방황을 하는, 흔히 좀 엇나가는 젊은이들을 보면서도 ‘놔둬 그것도 한때’라고 하는 것도 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던 것이다. 한 번쯤은 겪어야 할  인생의 노정이기에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겪는 청소년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다 큰 어른이, 그것도 삶의 황혼을 가까이 둔 노인이 아직 인생에서 해야 할 일탈의 양이 남아 있는 것처럼 말도 되지 않는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언제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치유 프로그램을 방송한 적이 있는데 노부부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주인공은 칠순이 지난 부부였는데 툭하면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었다. 교육의 유무와 상관없이, 사람은 나이 들어가면서 긍정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방송에 나오는 남편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마을 갔다가 늦었다는 이유로, 음식이 자신의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부부관계에 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었다. 아내를, 인격을 가진 대등한 관계로 대하기는커녕 소유물인양 대하는 모습이 참 비정하게 보였다.


  고희가 어떤 나이인가. 듣는 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경지인 이순도 지나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도에 어그러지지 않는다는, 도와 행위가 일치하는 경지에 이른 연륜이 아닌가. 나아가 자신의 부족함은 물론, 남의 잘못이나 허물도 덮어줄 줄 아는 여유도 생겨날 법한 연륜이 아닌가.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소중한 아내와 함께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며 살아도 빠듯할 시기에 하루가 멀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무슨 지랄인지 모를 일이다.     



  세상이 변하고 남녀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하였기에 방송을 보는 내내 믿어지지가 않았다. 북어와 여자는 사흘에 한 번 두들겨 패야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이 있었듯, 엿날에야  맞고 사는 여자들이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고도 당연시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시대가 변했듯 많은 분야에서 그릇된 관습이 고쳐졌음에도  아직 우리 사회에는 알게 모르게 매를 맞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안타깝고 화가난다.    


  식품에는 유통기한이 있고 공산품에도 알고 보면 유통기한이 있는 것들이 꽤 많다. 뿐만 아니라 말이나 어떤 행동도 특정한 기회를 놓쳐버리면 소용이 없는 경우가 있다. 한성열 교수의 말처럼 인생에서 해야 할 일탈, '지랄의 총량'이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면 미처 발산되지 않은 여분의 양은 여건에 따라 언제라도 튀어나올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일탈의 양은 꼭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성질은 아닐 것이다.     


  다행히 사람은 사유와 반성을 할 줄 아는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하여 아무리 인생에 정해진 양의 ‘지랄’이 있다 하더라도 유통기한이 지나면 그것은 이미 본디의 성분을 잃어버리거나 제 기능을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부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이 있으면 내다 버린다(간혹 아깝다고 버리지 못하고 그냥 두었다가 좀 더 시간이 지나서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혹 일생에서 쏟아내지 못한 잔량의 지랄이 남았다 하더라도 유통기한이 지난, 하등 쓸모없는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 하물며 생의 완숙기라 할 노년에, 남은 지랄이 있다하여 악행을 일삼는 것은 용기도 배포도 아닌 백해무익한 악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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