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노자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돌아온 서울
2월 초에 입국했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대학 졸업까지는 베이징에서, 졸업 후 서울에서 약 2년간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그 후 다시 해외이직, 상하이에서 3년을 보내고 돌아와 다시 서울살이를 시작한다.
인청공항에서 코로나 방역으로 인해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인증할 일이 많았는데 정지시켜 둔 탓에 다음스텝으로 나아가질 못해 고생이 많았다. 하필 12시에 입국을 해서 모든 안내원들이 점심시간을 갖고 있던 참이라 정지된 것을 풀 수도 없었다. 그래도 감사하게 다 방법은 있었고 방역택시를 타고 보건소로 향했다.
서른 살이 되어 깨달은 것은 “어떻게든 다 길이 있다”
방역택시는 포켓와이파이 서비스를 제공했고 "역시 우리나라 인터넷강국!"을 마음속에 외쳤다.
점심시간이 끝나 114에 전화를 걸어 정지된 핸드폰을 재활성화했다. 너무나도 쉽게 해결이 되었다. 신속하게 이뤄진 전화 한 통, 이렇게 확실하게 바로 해결이 되다니! 역시 한국이 최고야!
한국의 2월은 상하이에 비해 기온이 훨씬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습한 상하이에 비해 덜 춥게 느껴졌다. 심지어 바람이 안부는 날은 밖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났다. 중국에서 한국여행을 한 적 있는 친구들이 한국인들은 어떻게 한겨울에 반바지에 패딩을 입고 일층에서 담배를 피울 수가 있냐, 어떻게 한겨울에도 얇은 살색 스타킹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닐 수 있냐 물어온 게 있었는데 그게 생각이 나더라.
집에 오자마자 나보다 먼저 중국에서 도착한 박스들을 풀고 옷장을 청소하고 짐정리를 했다. 중국에서 현지채용 외노자로서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다 한국의 집에 오니 너무나도 쾌적했다.
2월은 그렇게 3년 전 싸들고 간 이민가방을 다시 풀고 고구마를 까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이민가방"이란 단어, 국가간 이동은 이제 좀 지쳐서 그런가 썩 기분좋은 단어는 아닌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