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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의 기록 Feb 24. 2024

엄지 손톱

   

한 달 넘게 붙인 반창고를 떼고 엄지를 보았다. 물론 그동안 반창고를 갈며 엄지 손톱을 스치듯 보았지만 자세히 보진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라비틀어진 껍질처럼 옛 손톱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새 손톱이 자라고 있다. 손톱 뿌리인 하얀 둥근 곡면이 얼굴을 내밀고 손톱 윗부분은 여전히 옛 손톱 일부가 남아 있다. 새 손톱과 헌 손톱 사이에 경계선이 있다. 손톱 아래 붉은 맨살이 마치 패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손톱과 손톱 사이를 구분 짓는 경계선이 손톱 아래 맨살이다.      


지금은 통증이 전혀 없다. 손톱이 다친 초기에는 거즈에 3M(쓰리엠) 종이 반창고를 감아 놓아서 확연하게 눈에 띄었다. 나 엄지손톱 다쳤어요, 라고 광고하는 듯해서 다쳤구나, 라는 말을 인사처럼 들었다. 올해 1월 초,  베트남 호찌민에서 손톱이 다쳐, 처음으로 베트남 병원 응급실에 다녀왔으니, 좀처럼 경험한 적 없는 일은 기념할 만한 추억으로 남았다.      


새 손톱이 자라기만을 기다린다. 손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손톱이 더 빨리 자란다고 한다. 각종 집안일과 이렇게 노트북 자판을 매일 두드리는 일도 ‘손 활동’에 들어간다면, 나의 손톱은 더 빨리 자라리라. 발톱이 빠졌던 사람은 새 발톱이 완전히 자라는데 1년 정도 걸렸다고 한다. 발톱은 손톱보다 덜 드러나서 느리게 자란다고 한다. 손톱이 드러나고 활동이 많을수록 빨리 자라는 원리다. 일반적으로 손톱 뿌리 부분에서 손톱 끝까지 성장하는데  5~6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니, 느긋하게 기다려야 겠다. 이제 두달 정도가 지났을 뿐이다.      


손톱 일부가 빠진 모습이 보기 좋지 않으니, 반창고를 꽁꽁 붙이고 다녔다. 어디 특별한 데 가지 않으면, 평소에는 반창고를 붙이지 말라는 정형외과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이젠 가능한 반창고를 붙이지 않으려 한다. 처음에 흉해 보였던 손톱도 이제는 그럭저럭 볼 수 있다. 그렇게 상처가 눈에 익어간다.      


한 달 넘게 반창고를 붙인 탓에 엄지의 맨살이 낯설고 다른 부분에 비해 조금 하얗다. 엄지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통풍되도록 자주 바람을 쐬어야겠다. 엄지를 의식적으로 덜 사용하면서 엄지가 얼마나 많은 기능을 담당했는지 새삼 알게 된다. 사소한 모든 일이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머리를 시원하게 감는 일부터, 가방을 메고 물건을 드는 일까지. 왼손 엄지여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오른손 엄지였다면 아마 더 불편했겠지.      


손톱보호 없이 무방비로 노출된 맨살이 다른 무언가와 닿을 때, 미세한 통증이 있다. 손톱이라는 ‘손가락 말단 부위에 붙어 있는 반투명의 단단한 케라틴(단백질) 판’은 그렇게 존재감을 과시한다. 다치거나 아플 때, 나의 몸은 그렇게 신호를 보낸다. 조금 더 잘 돌봐달라고. 상처를 외면하지 말라고.      


작은 상처 정도는 그냥  자연치료로 낫게 하던 나였다. 일일이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는 일이 성가시게 느껴졌고, 언제 다쳤는지 모르는 상처는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낫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예전만큼 재생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살펴주어야 한다. 상처를 외면하면 상처를 키우는 꼴이 되어, 커진 상처는 더 큰 대가를 요구하니까.  내 몸을 돌보는 건, 나를 위한 일만이 아니라 나와 같이 있는 사람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나의 엄지손톱이 알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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