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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밤 과자점 Jun 27. 2021

당신을 기억합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영국 이야기 3 - 메모리얼 벤치와 블루 플레이크

  런던 시내 구석구석을 걷기 시작하고 나서 걸어야만 보이는 것들을 하나둘씩 발견하는 것은 코로나 시대를 보내는 내게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많은 거리를 걷고, 공원을 찾고, 미술관과 박물관을 오가며 느끼는 것들을 다 풀어내면 책을 한 권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많은 것들 중에 요 며칠 눈에 밟혔던 것은 걷다 보면 마주치는 메모리얼 벤치들과 블루 플레이크(Blue Plaque)이다. 메모리얼 벤치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기억하는 마음을 담아 기증한 쉼터이고, 건물 외벽에 붙은 블루 플레이크는 이곳에 그가 살았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주는 명패이다. 저명인사가 아닌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가 살았던 곳을 기억하고 그가 자주 거닐던 장소를 추억하는 것은 내가 생각할 때는 굉장히 사적인 영역인데, 이렇게 공적으로 표식을 남기는 행동은 어떤 의미일까. 

Kenwood House 근처, 메모리얼 벤치들의 모습

 먼저, 이 두 가지가 가능한 영국의 배경을 이해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영국인들에게 공원이라는 장소가 갖는 역할이다. 우선 런던은 평지로 구성되어 있고 곳곳에 크고 작은 공원들이 매우 많다. 집을 나서서 조금만 걸어가면 공원이 있고, 변덕이 심한 날씨 덕분에 해가 조금이라도 얼굴을 내밀면, 런더너들은 밖에 나가 햇살을 누리는 것에 진심이다. 서울 사람들에게 공원은 크건 작건 산을 끼고 있거나 그게 아니면 한강시민공원이기 때문에 런던만큼 공원을 자주 찾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한강시민공원에 가면 집에서 바리바리 싸온 피크닉 용품들(의자, 탁자, 텐트 등) 한 짐을 펼쳐 놓고 치킨, 피자, 맥주 등으로 한상 제대로 펼쳐 놓고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우리는,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런던 사람들은 공원에 갈 때 먹을 것으로 중무장하고 가는 경우보다는 가볍게 읽을 책, 혹은 노트북을 들고 커피 한 잔, 맥주 한 병을 사서, 공원 아무 곳이나 누워 일광욕을 하는 데에 더 진심이다. 키우는 애완견과의 산책, 혹은 러닝, 요가, 복싱 등 운동을 하기 위해 공원에 가는 것은 거의 필수 코스이고. 그런 이유로 고인과 함께 자주 가던 공원에 메모리얼 벤치를 기증하는 방식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기억하고 그와 함께 했던 시간과 공간을 추억하고 싶은 마음과, 그곳에서 다른 누군가의 메모리얼 벤치에 앉아 쉬어 갔던 것을 돌려주려는 마음일 것이다. 

 한국도 최근에 조성되는 숲에는 메모리얼 벤치가 보이긴 한다. 처음 시작은 공원 조성을 지원한 기업들과 좋은 구절을 새겨 넣는 방식으로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개인 기부 형식으로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는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나면 산소에 모시거나, 추모공원에 모시는 것에 더 익숙하다. 그곳들은 대체로 주거지역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돌아가신 분이 그리울 때마다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아니, 우리는 살아 계실 때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며 그 분과 소소한 추억을 만들거나 공원에 산책 갈 만한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내 마음속에 계신다는 말로 위로하지만 사실은 후회하는 시간이 더 많다.(물론 아닌 사람도 있을 테지만)


 또 하나,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블루 플레이크, 파란색 명패이다. 혹시라도 눈여겨본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주택가 아무것도 없는 동네에도 갑자기 파랗고 동그란 명패가 붙어있어서 뭐지? 하고 바라보니 그 건물에 예전에 살았던 사람을 기리는 명패였다. 대부분의 명패는 대체로 그가 속했던 회사, 기관 혹은 단체인데, 이를 테면 **사업체 조합, **연구원, ** 자선단체 등이고 조금 널리 알려진 인물들의 경우에는 런던의 각 구의회, 잉글리시 헤리티지(English Heritage 자선단체)에서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고인의 이름, 출생연도와 사망연도를 적고 직업이나 업적을 간단히 명기한다. '대규모 케이터링의 선구자였던 A 씨(19XX ~ 20XX)가 살았던 집'이라고 써 놓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주거 형태가 아파트먼트이기 때문에 이러한 메모리얼 플레이트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영국은 아직도 18, 19세기 때 지어진 조지안, 빅토리안, 에드워디안 시대의 건물들이 주택으로 활용되고 있고 보존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블루 플레이크를 알게 된 이후로 길을 걷다가 파란 명패를 만나면 발을 멈추고 그가 누구였는지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은 굉장히 유명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는데, 찰리 채플린이나 찰스 디킨스 같은 사람들이었다. 찰리 채플린이 아주 잠시 살았던 그곳은 런던 중심가도 아니었고 템즈강 남쪽 Kennington 부근의 주거지였으며, 찰스 디킨스는 그가 살았던 곳이 허물어지고 새 건물이 들어서서 이 근방에 살았었다고 적혀있었다. 우리도 누군가의 생가를 보존하는 일이 있지만 그들 생의 일부분만 머물렀던 모든 곳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물론, 자선단체에서 일부러 만든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런 소소한 기록들을 모으고 남기는 일 그것만으로도 우리와 영국인들의 차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보면 메모리얼 벤치는 매우 사적인 영역, 그러니까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 혹은 이모 삼촌과 같은 존재로서의 사람을 기억해주는 것이고, 블루 플레이크는 그가 이룬 업적을 기억해주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 기억하려고 하고 기억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그리고 이렇게 떠나간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이 별스럽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는 이곳이 부럽다. 런던의 수많은 공원이 부럽고, 서울에서는 쉽게 볼 수 없지만 런던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는 벤치들이 부럽고, 아파트가 대부분인 서울의 주거 문화와 달리 옛 것이 고스란히 남아(다시 말하면 살기는 좀 불편한), 시대를 초월하여 살아남을 수 있는 런던의 주거 환경도 부럽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나중에 부모님과의 추억을 돌이켜 볼 장소는 어디일까, 서울 우리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때때로 엄마 아빠를 그리워하며 쉴 수 있는 곳이 있을까. 그런 시간은 충분히 가졌나. 생각은 자연스레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으로 향한다. 과연 나는 이 세상에 내 이름 석자를 남길 수 있을까. 나중에 죽고 나서 누군가가 기억해줄 만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혹은 기억해줄 누군가가 있기는 할까. 그렇게 길을 걷다가 만난 벤치와 파란 명패를 마주하며,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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