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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노루 Nov 08. 2018

서로 딱 맞는 소리를 내어야 하는가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제14번>

베를린 필하모닉 챔버 오케스트라


무대 위에 오른 연주자들은 본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각자 자신들의 악기 소리를 냅니다. 연주자가 홀로 무대 위에 오르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의 악기 소리에 자신의 악기 소리를 맞추기 위한 것입니다. 즉 그들은 ‘조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향악단의 경우에는 오보에가 주로 ‘기준’의 역할을 합니다. 오보에가 a(라) 음을 내면, 오보에를 제외한 모든 악기들이 오보에의 소리에 맞추어 조율을 합니다. 때론, 바이올린이 이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서로 음을 맞추어야지만, 서로 다른 악기들이 조화로운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만약 조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주를 한다면, 그 음악은 어쩌면 우리 귀에 거슬리는 '소음'에 가까울 것입니다. 조율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오보에 연주자 (토머스 에이킨스 그림)




현악 4중주는 바이올린 2대와 비올라 1대, 그리고 첼로 1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연주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제1바이올린에 따라 나머지 악기들이 소리를 맞춥니다. 현악 4중주는 흔히 '고전주의 시대'라고 불리는 18세기에 인기 있었던 장르로, 베토벤은 총 16개의 현악 4중주를 작곡했습니다. 이 가운데, 마지막 5개의 현악 4중주는 1824년부터 1826년까지 베토벤의 말년에 작곡된 작품으로, ‘후기 현악 4중주’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1827년 세상을 떠난 베토벤의 내밀한 마지막 목소리로 해석되며, 여타 다른 작품들보다도 각별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줄리어드 현악4중주단 (Juilliard String Quartet)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제14번>은 1826년에 완성되었습니다. 현악 4중주는 일반적으로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7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베토벤의 5개 ‘후기 현악 4중주’ 중, 두 작품(12번, 16번)만이 전통적인 4악장이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악 4중주 제14번>이 가장 많은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악장들은 길이가 짧아서 간주곡과 같은 역할을 하는 3악장과 6악장을 제외하고는 각기 다른 빠르기와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1악장은 푸가, 2악장은 작은 소나타-론도, 4악장은 변주곡, 그리고 5악장은 스케르초, 마지막 7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가장 독특한 점은 7개의 악장이 쉬지 않고 연주되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7개의 악장을 연주하려면 총 40여분의 시간이 소요됨에도 말입니다. 보통 여러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작품들은 첫 번째 악장을 연주하고 잠시 쉰 후, 다음 악장으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공연장에 가게 되면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말라는 '지령'이 내려지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악장 사이에 왜!?! 굳이, 잠시 쉴까요?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제14번>처럼 쉼 없이 연주된다면, 악장 사이에 박수 칠 걱정도, 혹여나 박수를 쳐서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을 걱정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악장 사이의 ‘쉼’은 청중에게, 그리고 연주자에게 나름 유용합니다. 청중은 한 악장이 끝나고 난 후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는 잠시의 ‘짬’ 사이에 약간의 릴랙스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음악을 듣는 행위는 생각보다 힘들고 긴장되는 일입니다. 한 악장이 마치고 나면, 그 많은 사람들이 기침을 하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는 연주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연주자들은 악장 사이에 악기를 점검하기도 합니다. 특히 조율에 신경을 씁니다. 현악기는 연주를 하다 보면 줄이 풀어지기 때문에, 때로는 악장 사이에 음을 다시 맞추기도 합니다. 그래서 악장 사이의 쉼은 꽤나 유용합니다.


그런데,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제14번>은 7개의 악장이 약 40여분 가량 연주될 동안, 단 한 번의 쉼도 없이 연주됩니다. 그래서 마지막 악장에 다다르면, 4개의 악기들은 서로 음이 잘 안 맞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7악장은 4개의 악기가 모두 똑같은 “도#”(c#) 음을 소리 내며 시작됩니다. 소나타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주제를 4개의 악기가 모두 동일한 소리를 내는 유니슨으로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악장 중간중간에 이러한 유니슨 부분은 꽤나 자주 삽입되어 나타납니다. 그러나 쉼 없이 달려온 4개의 악기가 연주하는 "같은" 음들은 어쩌면 서로 '딱'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약 30여분 동안 연주하면서, 악기들의 조율이 헝클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악성’이라고도 불리는 베토벤은, 왜 그랬을까요? 베토벤은 이 음악을 통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것일까요?




인상파, 베토벤


베토벤은 공화제를 지지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말년에는 절대왕정을 유지하고자 했던 정부로부터 블랙리스트에 올라 감시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현악 4중주 제14번>의 제1악장은 푸가로, 각 성부가 독립된 소리를 냅니다. 1악장을 연주할 때, 4개의 악기들은 조율이 잘 된 상태에서 연주를 합니다. 그러니까 서로 음이 잘 맞는 4개의 악기들이 각기 독립된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한편 마지막 7악장은 소나타 형식입니다. 소나타 형식은 중심 조성과 주제가 있고, 이로 인해 음악이 발전되고 전개됩니다. 그런데 4개의 악기는 아마도 오래된 연주로 인해 조율이 풀려서 서로 딱 맞는 소리를 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4개의 악기가 중심 주제를 같이 얘기하더라도, 그 소리는 조금씩 삐그덕거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잘 어우러지는 소리를 내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우리는 늘 '조화', '화합'을 얘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화합을 얼마나 강조하는지요? 그런데, 같은 소리를 내는 것, 조율이 잘 된, 듣기 좋은 소리만을 내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일까요? 정말 좋은 것은, 어쩌면 정말 좋은 사회는,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을 허락하는, 그리고 그러한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닐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pA4_FnH49tA




덧붙여, 우리나라에서 2013년에 개봉한, 영화 <마지막 4중주>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제14번>을 다룬 것입니다. 이 영화는 4명의 연주자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일어나는 (막장적 요소가 들어가 있는) 갈등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숨겨져 왔던 갈등이 터져 나오면서 '진정한' 화합(?)이 일어나는데요, 이 영화, 한 번 봐 보시죠! 약 10여분 동안 연주되는 엔딩 부분은 그야말로 한번 볼 만합니다. 진정한 조화, 협화를 생각해보면서 말입니다.


영화 <마지막4중주> 공식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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