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란 Mar 05. 2021

장골댁에서 장골 아주머니로

619-13번지 4화. 그 시대의 금수저, 흙수저


@류병석 지음


법적 53년생이나 실제로는 52년 생, 현재 70세 촌부.

초등학교 졸업 후 야간 학교를 다녔다. 

그게 배움의 전부지만 누구보다 똑똑하다 .

1남 1녀를 둔 가장으로, 예전에는 큰소리를 떵떵치고 살았으나

지금은 어느날 시작된 아내의 반란으로 나름 투쟁하며 살고 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성실'을 무기 삼아 열심히 살아온 이 시대의 '아버지'이다.


일제 강점기,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이다. 


닭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일본 놈들의 극악무도한 찬탈 속에서도 봄은 오고 봄이 가면 또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꽃이 피고 지고 세월은 바뀌고 또 바뀌고 병약한 아들도 장성했다. 어려운 살림이지만 지극 정성을 다해서 아들을 키웠다. 남편에게도 지극 정성을 다했지만, 워낙 허약 체질로 태어나서 비실비실 목숨만 연명했지 산 송장과 다를 게 없었다.     


세월이 흘러 흘러 장골 댁은 명칭이 바뀌었다. 장골 아주머니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길쌈했다. 밤새며 베를 짜서 장에 내다 팔면서 한 가정을 지켰다. 시집올 때만 해도 어리고 어렸던 소녀는 이제 치마를 두른 대장부가 되었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 소녀로 새댁으로 아주머니로 반평생을 살아온 셈이다. 시대를 잘못 태어나서 그렇지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면 아씨요, 마님이 되었을 기질이었다. 그러나 가난하고 천한 집에 태어난 자는 태어날 때부터 부르는 호칭이 다르다. 언년아, 행랑아범, 무슨 댁. 


(나 : 아버지의 자전적 소설이 이토록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으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 이 이야기들을 어떻게 주워담으려 하십니까.)     




양반과 상놈이라 하지 않는가. 신분은 태어날 때부터 갈려서 나온다. 양반은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갖고 태어나고 상놈은 수저고 뭐고 없다. 지금 흔히 말하는 흙수저와 금수저가 그때라고 다를 게 없던 시절이었다. 그저 굴러가는 대로 자기 듯과 의도와 상관없이 양반들이 시키는 대로 내 인생을 사는 게 아니고 남의 지시대로 살고, 가난과 살림도 대물려서 이어진다. 그러니 얼마나 불공정한 삶인가. 참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런 세상에 태어났으니 열심히 살아야지.      


게다가 양반이라고 해서 편안한 생활을 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양반네들은 양반대로 불편한 점도 많았으리라. 체면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평민은 체면 볼 것 없이, 격식 차릴 것 없이 그냥 편한 대로 바지나 잠방이를 걸쳐 입으면 그만이지만 양반은 갓 쓰고 도포 입고 두루마리를 챙겨 입어야 하니. 양반 체면 차리려면 그 나름대로 힘들었을 것이다. 걸음걸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교육받은 양반네들은 옷 입는 것부터 머리에 쓰는 것, 걸음걸이까지 체통을 지키기 위해서 나름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상놈은 체통 지킬 일도 흉될 일도 없으니 어떤 삶이 편하게 산 삶인지는 평가하기 나름일 것이다.   


(나 : 아버지의 가치관을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행복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신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아버지가 말하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주문인 것 같다고. 진짜 '행복'이 아니라 '나는 행복해야만 한다'는 주문. 그렇게 아버지는 행복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지금도 마찬가지 않을까. 금수저가 편할지, 흙수저가 편할지 누구도 알지 못할 일이다. 중요한 건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뿐이다. 장골 아주머는 한 번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그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나아갈 뿐이었다. 


(나 : 이 부분은 공감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자신이 갖지 못한 삶, 누리지 못한 삶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 남을 비교하며 자신을 낮출 필요도,  남에 비해 행복하다고 자신할 필요도 없다. 그저 우리는 삶을 살아갈 뿐이다. 불행하지 않도록, 나 자신을 잃지 않도록, 최대한 행복해질 수 있도록. 이러고 보니, 나는 정말 아버지를 닮았다)     


그 장골 댁이 바로 나의 증조 할머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린 새댁은 그렇게 가장이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