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놓인 두 개의 유리병은 받아 적은 이야기 같다. 두 유리병에는 그렇게 보관하지 않았다면 사라졌을 것이 담겨 있다. 어떤 이야기는 사라지게 두는 편이 나았겠지만, 무언가를 적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그 이야기를 그 모습 그대로, 설탕물에 담근 살구처럼 고정시키는 일이다.
p350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반비
지난 봄에 담근 살구절임을 한 두 개씩 꺼내어 샐러드에 넣는다. 새콤한 맛은 사라지고 달콤한 맛만 남아 있다. 다 무른 것 같지만 씹으면 건조 과일처럼 단단한 과육의 질감이 느껴진다.
드레싱에는 귤청을 섞는다. 청귤은 가장 더운 여름 한 달간만 수확하는 풋귤이라 한다. 제주에서 택배로 오 키로 씩 두 박스를 주문해 절반은 청으로, 절반은 잼을 만들었다. 청은 다 나누어 주고 한 병만 두었는데 의외로 아이가 잘 먹어주어 거의 비워간다. 따뜻한 차로 마셔도 좋고 차가운 탄산수에 넣어도 어울린다. 어느 날 집 안을 가득 채워버린 살구 더미로 시작하는 책, '멀고도 가까운' (원제:farawaynearby)을 2019년, 올해의 시작에 읽었다.
그날들이 보라색과 한밤의 파란색이었다면, 지금은 오렌지빛으로 물든 저녁이다. 다른 과일의 이름을 딴 '오렌지색'이 살구의 그 부드러운 색감을 묘사한다고 할 수 없다. 살구의 빛깔은 복숭아보다 더 풍성하고, 저녁 하늘의 붉은 빛, 혹은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는 아이들 뺨의 빛깔과 비슷하다. p129
책 속에서 살구는 잼으로, 처트니로, 리큐어로 변한다. 나는 저녁 하늘의 빛, 금빛으로 반짝이는 아이들 뺨의 빛깔로 묘사된 살구의 오렌지색 빛깔을 상상하며, 설탕과 시럽에 절인 살구의 달콤한 맛을 부지런히 상상하며 책을 읽었다. 일 월 생일 무렵에 읽은 책을, 일 년 내내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꺼내어 읽고 또 읽었다. 고교 시절 유행하던 뜯어먹는 영단어 책처럼 책 속의 모든 이야기들을 꼭꼭 씹어 소화하고 싶었다.
어쩌면 절임이란 역사가의 요구와 요리사의 능력이 만나는 지점인지도 모른다. 어제의 저녁 하늘, 사랑의 밤, 산속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 내 정신에 불을 당겼던 어떤 깨달음, 춤, 조화로웠던 어느 날, 근사한 구름이 있었던 수천의 나날, 결국 사라져 버릴, 다시 볼 수 없을 그 순간들을 후손을 위해 유리병에 차곡차곡 담아 둘 수 있으면 좋겠다. 후손이 때때로 그것을 경외의 눈길로 바라보고, 필요할 때마다 다시 맛볼 수 있게 말이다. p126
작가의 말처럼, 글쓰기는 청 담그기와 닮아 있다. 우리 모두가 민족 중흥의 사명을 띤 역사가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짧은 메모든 긴 글이든 우리는 끊임없이 기록한다. 잊지 않기 위해서, 기억하기 위해서.
유난히 신비로웠던 어제의 저녁 하늘을, 작지만 기분 좋은 일들로 채워진 보통의 하루를. 언젠가 다시 꺼내어 볼 날에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을 기대하면서.
장을 보다가 살구를 만나니 반가웠다. 흔히 씻어 바로 깎아 먹는 과일은 아니라 어떻게 먹어야 할 지. 이제는 알았다. 책에서 보았던 대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시래깃국은 지난번 맛있게 먹어주어 한번 더 끓였다. 목살은 굽고. 이제 우리 아들은 알배기 배추에 쌈장을 올려 야무지게 먹을 줄 안다. 우리에게 풍성한 저녁이다.